전역처분 무효 확정에도 소멸시효가 발목
국가배상 소송에서 1·2심 패소 판결 받아
대법 "전역 무효 확정 기점 시효 계산해야"
유신정권 시절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불법 고문에 시달린 끝에 전역한 육군 대령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7일 불법체포와 가혹행위로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됐다며 황모 전 육군대령과 그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황 전 대령은 1973년 4월 '윤필용 사건'으로 군단 보안부대에 감금된 채 고문을 당한 뒤 전역 지원서를 작성하고 전역했다. 윤필용 사건은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윤 소장과 측근 장교들이 처벌 받고, 윤 소장과 관련 있는 장교들이 보안사령부의 강요로 전역한 사건이다.
황 전 대령은 이 사건에 연루돼 육군 3군단 보안부대로 연행돼 조사관으로부터 윤 소장에게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추궁 당했다. 황 전 대령은 당시 보안수사관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 구타 등에 시달리다 전역지원서를 쓰고 풀려났다. 하지만 그해 다시 한번 보안사령부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황 전 대령은 2017년 40여년 만에 전역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듬해 국가를 상대로 3억4,000만 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황 전 대령이 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가 발생한 날부터 10년,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부터 3년 이내에 유효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수사관들의 불법행위는 1973년에 있었는데 소송은 2018년에 제기했다"며 청구 시효가 지났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황 전 대령이 전역무효 처분을 확정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황 전 대령이 2017년 전역 무효를 확정받고 다음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전역처분이 무효로 확정받기 전에는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사정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소멸시효를 확정판결 이후부터 기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민법상 '손해를 안 날'은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인식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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