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 인터뷰
"아산병원 사건, 의료인력 구조가 문제
의사 소수가 권한 독점하는 구조 깨야
의사 늘어 대체재 생기면 '의료 파업' 못해"
"교육부가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린다고 했죠. 의사는 한참 모자라는데 왜 의대 정원은 안 늘리는지 이상하지 않나요."
지난 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회 위원장인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건 교육부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 방안'이 계기가 됐다. 그가 "교육부 발표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의 함의가 있다"는 독특한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인력난으로 특정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인재 양성 방안'이 단골 대책으로 나온다. 아산병원 사건 역시 고질적인 의료 인력난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가' 얘기만 나올 뿐, 인력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김 교수는 "교육부가 의대 정원에 손을 댈 수 없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대학 정원 중 거의 유일하게 손을 못 대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의대'다. 보건복지부와 의사단체가 논의해 정하는 희한한 구조 탓에 의대 정원은 3,000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20년 조사에서 한국의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멕시코(2.4명) 다음으로 의사 수가 적다. 의학계열 졸업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13.2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데 의대 정원은 왜 늘리지 못할까. 김 교수는 "의사단체가 의사 수가 적은 걸 이용해 권한을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주지 못해 물건값이 자꾸 올라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의사 몸값이 올라 복지부가 의사단체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해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것만이 잘못된 구조를 깰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OECD 중 멕시코 다음으로 의사 수 적은 한국
-아산병원 사건이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가 낮아서 생긴 문제란 지적이 나왔다.
"의료계 주장대로 진료과목 간 수가 불균형 문제는 인정하지만, 불균형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흉부외과를 예로 들어보자. 2009년 흉부외과에서 전공의 모집이 어렵다고 해 수가를 100% 인상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도 전공의가 부족하다고 외친다. 수가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란 얘기다. 또 특정 과목의 수가를 높이면 상대적으로 수가가 낮은 과가 생긴다. 일종의 풍선효과로, 수십 년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 인력난을 해결할 대책은 무엇인가.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접근하면 된다. 사회적 수요에 비해 공급되는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럼 공급을 늘리면 되는데, 바로 의대 정원 확대가 답이다. 과거 의료기관이 매년 필요한 전공의를 4,000명으로 잡았지만, 의대 정원은 3,000명이다. 공급량이 매년 1,000명씩 부족하다 보니 비인기과의 전공의 부족 현상은 계속됐다. 이게 20년간 방치되자 수요·공급 간 격차를 줄이자며 전공의 선발 인원을 3,000명으로 줄였다. 전공의 선발을 줄이면 인기과에 몰려 비인기과에 졸업생들이 안 가는 현상이 줄어들 거라고 본 것이다."
"공보의 끊길 정도로 의사 수 부족, 공공의대 설립 필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비인기과 기피 현상이 사라질까.
"장래가 보장된 인기 과로 몰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공급량 자체가 늘면 기피 과에도 전공의들이 흘러가게 된다. 의대 정원은 지금보다 1,000명 많은 최소 4,000명은 돼야 한다. 이렇게 뽑아도 10년은 지나야 개선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사 수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공공의료 확충도 시급하다. 의료 취약지역과 서울 간 의료 불균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대학병원의 전문인력 공급이 가능해 해당 지역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 또 국군병원이나 교정시설, 보건소 등 공공시설의 의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통 이곳에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배치했는데, 지금은 의사 수가 부족해 공보의도 파견되지 않는 상태다. 취약지역을 담당할 의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일각에선 의대가 넘친다고 지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 개수는 많을지 몰라도 정원이 50명 미만인 곳도 있다. 대학 개수가 아니라 공급되는 전체 의사 수를 봐야 한다."
"약대·간호대 정원은 늘렸는데 왜 의대만 안 되나"
-의사 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모두 의사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막강한 힘을 가진 의사단체를 두려워하는 게 문제다. 의사 수가 소수란 점을 무기로 권한을 독점해 이들의 힘이 세졌다. 의사단체는 이 힘을 무기로 '진료 거부' 등 의료 파업을 일삼는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하는 게 정당한가. 약대와 간호대 정원은 10년 사이 2배가 될 정도로 늘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의사단체 동의 없이는 의대 정원 확대는 못 하는 거 아닌가.
"정부가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집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의대 정원이 늘거나 공공의대가 잘 돌아가면 의사단체가 파업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게 어려워진다. 민간이 파업을 강행해도 공공의대란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1993년 한약분쟁(한약제조사 도입) 때 약사들이 파업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다. 당시 의약분업 전이라 병원에서 약 제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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