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
'광주 보육원 출신 청년 비극'에
"충분히 예측가능했던 위기 대처 못해"
"영국은 보호종료청소년 거주지 방문해
살기 적합한 곳인지 판단... 8주마다 면담
심리적으로 평온한지 꼭 물어봐"
"한국, 매년 전화 한 통만... 26%는 연락 두절"
"호주는 취약계층 소비·생활 습관 길러줘"
"경제적 도움도 필요했겠지만, 고민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단 한 명만 있었다면, 손잡아 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잇따라 발생한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비극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허민숙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건복지여성팀)이 "가장 취약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위기를 사전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 꺼낸 말이다.
그는 '보호종료 청소년 자립지원 방안'(2018년 9월)이라는 입법정책보고서, '자립지원의 공백: 보호종료청소년을 위한 개인 자립지원 상담사 도입과제'(2021년 4월)라는 분석자료 등을 펴내며 자립준비청년 지원 제도 개선을 촉구해왔다. 국회와 정부도 시범사업을 거쳐 2020년부터 도입한 자립수당제도(현재 기준 보호종료 후 5년까지 35만 원), 전국 17개 시도에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 의무화, 자립지원전담요원 확대 등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지원 체계가 걸음마 수준인 데다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만족할 만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광주만 해도 자립지원전담기관이 개소한 지 석달밖에 안 됐고, 자립지원전담요원 6명이 도와야 할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 후 5년 이내)은 536명에 달했다. 전담요원 1명이 89명을 담당하는 꼴이라 도움을 주기 어렵다. 다른 시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과 세종은 자립지원전담기관이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다.
허 조사관은 "개인상담사들이 8주마다 자립준비청년을 만나 밀착 지원하는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며 "미혼모가 생활 소비습관을 익히게끔 도와주는 호주의 사례도 접목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봤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영국의 개인상담사(Personal Advisory)제도는 어떤 제도인가?
"영국은 보호아동이 만 18세에 보호가 종료돼도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는데, 관련법에 따라 지방정부는 보호대상아동이 16세가 되면 지원을 위한 평가(Needs Assessment)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립지원계획을 세운다. 영국 트래퍼드 지역의 한 사례를 보면, 만 15세가 되면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해 16세 생일 3개월 전까지 반드시 완료해야 한다. 보호종료청소년(우리의 자립준비청년)은 21세까지 이 계획을 최소 6개월마다 검토한다. 여기에는 지방정부의 학업지원, 취업훈련, 주거지원, 경제적지원 등의 계획이 담기고 적절하게 제공되는지도 살핀다.
보호대상아동이 만 18세가 되면 지방정부는 모든 보호종료청소년에게 반드시 개인상담사를 지정해야 한다. 본인에게 배정된 상담사가 누구인지,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개인상담사는 보호종료청소년들이 성인으로 무사히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개인상담사는 보호종료된 자립지원계획 이행과 효과를 검토하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 이들은 최장 만 25세까지 청년들을 돕는다."
"영국, 보호아동 15세부터 자립 지원계획 세워... 18세 개인상담사 지정"
-우리도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영국은 보호종료청소년이 새로운 주거지에 정착하면 개인상담사는 7일 이내에 반드시 그곳을 방문해 주거에 적절한 장소인지를 평가한다. 집수리 상태, 안전, 위치, 임차권 지위, 재정 지원 등의 기준에서 주거 적합성을 평가한다. 살 만한 집인지, 계약은 잘 됐는지, 보증금이나 계약금은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을 따져 사기나 부당한 처우를 당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취지다. 무엇보다 그 집에서 심리적으로 평온함을 느끼고 있는지,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등 거주 공간에 대한 심리적 만족도를 꼭 묻고 확인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은 28일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
이후 최소 8주 간격으로 보호종료청소년을 방문 또는 면담해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이 덕분에 보호종료청소년의 주거지 평가에서 적합하다는 평가가 85%(2020년 기준)다. 적절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 서비스 제공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났는지 등 모든 사항도 기록한다. 만약 우울한 것처럼 보이면 상담센터 방문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담요원이 1년에 한 번 연락해 취업여부, 주거형태 등 단편 정보 수집에 그치고 있다. 전담요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 기준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이 돌봐야 하는 보호종료청년은 무려 85명(전국 자립전담요원 267명, 돌봐야 하는 아동청소년 2만2,807명)이다. 상당기간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연락해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제공하는 촘촘한 자립지원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보호종료 후 5년까지는 사후 관리를 한다. 연 1회 이상 대면 상담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유선 상담해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상담에서 위기라고 판단되면 '자립지원통합서비스'를 지원하는데 아직 열악하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립지원통합서비스 예산이 작년 400명분 정도에서 올해 1,000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했지만, 보호종료 5년 이내인 사후관리 대상자가 대략 1만3,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허 조사관이 쓴 보고서에 나오는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개인상담사는 '자립지원' 문제도 해소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지원 종류와 형태, 내용에 따라 개인상담사가 직접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적합한 기관과 담당자에게 연계해 준다. 보호종료청소년으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으면 반드시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 조사관은 "국내 자립전담요원에게 따로 지급되는 활동비가 없다고 들었다"며 "자립준비청년이 거주할 집을 마련했을 때 방문하거나 대면 상담하려고 해도 그 비용이 없으니까 부담스러워 적극적인 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개인상담사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여성 보호종료청소년의 임신 및 출산 여부, 현재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지, 자녀가 있다면 몇 살인지 반드시 질문한다. 보호종료청소년의 조기 임신, 출산, 양육이 학업중단, 생애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반복적 임신을 예방할 필요가 있어 조사항목에 포함하는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엔 사망했는지, 더 이상의 지원이 필요 없어서인지, 부모 또는 보호자와 함께 생활해서인지 등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조사한다."
"호주, 경제관념 심어주면서 지원금 단계적으로 확대"
그 결과는 자립준비청년과의 '연락률' 수치로 확인된다. 허 조사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영국에서 보호종료된 18세 청소년의 95%, 19~21세인 보호종료청소년의 90%는 정부와 연락이 닿고 있다. 영국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대략 9%로, 우리나라 연락두절률(26.3%)과 큰 차이를 나타낸다. 허 조사관은 "(국내 자립준비청년들은) '연락을 받겠다'는 조건으로 자립수당을 수령하는데 이 정도"라며 "욕심 같아서는 전담요원 1명이 맡는 자립준비청년이 10명 이내가 될 정도로, 전담요원을 더 많이 채용해 보다 정교하게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회성 자립정착금(지자체마다 상이, 500만~1,500만 원)과 자립수당(매월 35만 원)도 부족하다.
"매년 보호가 종료돼 시설을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이 2,500명 안팎이다. 많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적은 숫자이기도 하다. 좋지 않은 환경의 부모를 만나 세상에 내던져진 이들에게 자립정착금 1,000만 원, 매달 자립수당 30만 원 준다고 국가가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넉넉히 지원해줘, 사회에 역할하면서 자기 힘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만약 이들이 80세까지 기초수급자로 살아가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젊을 때 삶의 기반과 토대를 쌓아 자립하도록 확실히 지원해줘 안정적인 가정을 갖추면, 이 사람들이 수급자가 아니라 납세자가 된다. 국가 입장에서도 훨씬 비용이 덜 든다."
-현금을 많이 지원하는 방법이 좋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기도 하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얼마 전 만난 미혼모가 보호종료 청소년이었다. 그 친구는 처음 받은 자립수당(30만 원)으로 몇 십만 원짜리 옷을 샀다고 했다. 이 돈이 어느 정도의 돈인지, 이 옷은 얼마 정도 가치가 있는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판단을 못한다. 보육원에서 교사가 해주는대로 밥 먹고, 시키는 대로 생활해 온 자립준비청년들은 선택해본 경험도,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한 적도 없어서 그렇다. 부모님과 마트도 가고, 용돈을 관리해 쓰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관념과 판단력을 기르는 일반 가정의 아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활방법을 충분히 교육시켜서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퇴소 전에 가전제품 사용법 등 여러 교육도 한다는데, 사실 아이들 귀에 잘 들어가지 않고, 기억도 못한다. 보호종료 이후에 잘 돌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생각보다 내가 실전에 모르는 게 많구나'라고 절감할 때 도와주는 상담사가 있는 게 가장 좋다.
호주가 10대 미혼모를 지원하는 '라이프 스킬(life skill)' 방식을 차용할 만하다. 처음부터 목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월세와 관리비, 공과금 등 기본적인 비용을 내고, 미혼모에게는 체크카드를 지급해 생활비를 충당하도록 한다. 관리사(case manager)가 이 미혼모에게 조언해주면서, 돈을 규모있게 잘 관리하도록 돕는다. 생활자금 관리를 잘하면, 점점 금액을 늘려주며 단계적으로 자립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려면, 전담요원 1명이 관리해야 할 자립준비청년의 수가 대폭 줄어야 한다."
"나쁜 생각해도 손잡아 줄 1명만 있으면 살아요"
이런 시설보호의 여러 단점 때문에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가족과 분리된 아이라도 가능한 한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라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 가정식 보호를 권고해 왔다. 전 세계 90여 개국이 비준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또한 아동보호의 원칙으로 "시설보호는 마지막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이래 대규모 양육시설 중심이었던 기존 아동보호 체계를 소규모 생활가정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발생한 보호대상 아동 3,437명 중 시설에 맡겨진 경우가 63.5%(2,183명)로, 가정위탁 34.3%(1,179명)보다 훨씬 많았다. 허 조사관은 "보호대상아동이 위탁가정의 양부모 밑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게 좋지만, 혈연주의가 강한 문화 때문인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세밀하고 세심한 지원제도를 마련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사이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자립준비청년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었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때 어떻게든 용기 내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동권리보장원이든, 자립지원전담기관이든, 동주민센터든, 시설 선생님이든, 친구든, 아니면 저한테라도 연락하라. 불친절하거나 냉랭한 응대에 속상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기관에, 어른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면 친절하게 도와주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도움 요청을 받으면 '정착금 1,000만 원, 자립수당 35만 원 다 써서 앞이 캄캄해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추가 지원받을 수 있고, 학비 지원도 받고, 민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젊으니까 아르바이트 조금씩 하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면 된다. 이렇게 다독여 주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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