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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은 낡고 오래된 음악일까

입력
2022.09.01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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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클래식 음악은 낡고 오래된 음악일까. 몇 백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주자들은 이미 수만 번 반복되어 연주된 음악에서 무엇을 다시 재현하려는 것일까. 물론 클래식 음악의 주요 관심사는 낡고 오래된 과거의 걸작이다. 레퍼토리가 워낙 방대해서 입문자의 경우 어디서부터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가요나 팝송은 단번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에 신나는 비트까지 합세하니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겹겹이 층을 이룬 선율에 악곡의 구조도 입체적이어서 한 번 들어서는 영 파악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으레 익히 아는 것에 흠뻑 빠지고, 익숙한 것을 만나면 크게 기뻐하기 마련이다. 낯설고 복잡한 클래식 음악은 그만큼 높은 진입장벽을 지니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짧게 압축된 가요와 달리 기승전결의 서사가 유장하다. 연주 시간이 길고 구조가 복잡한 만큼 표현하려는 생각과 감정의 폭도 그만큼 넓고도 깊다. 그러므로 희로애락이 혼재한 장편소설과 같다. 강한 양념을 가미한 음악적 패스트푸드는 영적인 감각을 말초적으로 바꿔놓는다. 자극적인 음향의 바다에서 클래식 음악은 작은 등대처럼 청력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수만 번 연주되었지만 빛바래지 않는 악상은 들을 때마다 새로워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래되고 난해한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클래식 음악'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시간의 풍화와 청중의 변덕스런 호불호를 견딘 음악만을 일컫는다. 이렇게 역경을 헤쳐 생존한 작품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상 경험이 계속 반복될수록 새로운 선율과 음색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작곡가는 음향의 구름 속에 다채로운 상징과 은유를 숨겨놓는다. 다른 예술장르에선 이를 알레고리 혹은 메타포라 일컫는데, 시간의 흐름을 타고 매순간 휘발되는 소리 속에서 작곡가가 의도한 견고한 구조를 청각적으로 인지할 때 감상자는 크나큰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나 연주자들이 몇몇 핵심 레퍼토리만 우려먹다 보면 콘서트홀은 낡은 유물로 가득한 박물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앞으로 100년은 살아남을 작품들을 부단히 발굴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새로이 개척하는 현대 창작음악은 태생적으로 소수의 취향에 엘리트적일 때가 많다. 상업성에 휘둘리는 음악을 경계하다 보니 팔리지 않는 음악으로 자존심을 지키게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등 돌려 개인의 표현에 몰두해온 창작자들은 대중성을 획득지 못하는 처지를 종종 진지한 예술이라 위안하기도 한다.

대중성을 획득지 못한 클래식 음악계는 디지털 시대에 한층 더 불리한 상황을 맞고 있다. 현대인의 집중 시간이 디지털 기기의 말초적 자극에 오염되어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음악조차 잘게 쪼개진 기형적 단편들이 난무한다. 발단과 전개의 유장한 서사를 생략한 채, 절정과 클라이맥스의 악상만 인스턴트식품처럼 소모하니 말이다. 게다가 영상 매체가 발전하면서 공연 역시 청각과 시각을 혼용한 공감각을 추구하려 한다. 하지만 자칫 주객이 전도되어 소리보단 시각적 자극에 현혹되기 일쑤다. 말초적 자극이 높아지면 정신의 근력과 청각의 깊이는 자꾸 허약해지고 만다.

어떻게 하면 시대의 가열한 흐름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클래식 음악의 진정한 진수를 마주할 수 있을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많이 들을수록 귀가 틔고, 알면 알수록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는 점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영원히 동시대적이다. 자신의 시대를 담아내면서도 영원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클래식 음악은 낡지 않았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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