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던져진 강한·김지희·모유진 인터뷰
"무턱댄 지원금 인상은 근본적 해결책 아냐"
"누군가 죽어야만 보이는 '반짝 관심'도 상처"
경제교육·선제적 임대주택 연계 필요성 지적
"후배들 포기 말아야… 손길 내밀면 도울 것 "
"도움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했을 겁니다. 또 많이 외로웠을 거고요. 보육원 퇴소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봅슬레이 전 국가대표 강한(24)씨는 지난달 엿새 간격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광주광역시의 두 청년 얘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강씨가 이들의 죽음에 특히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강씨와 두 청년은 보호자 사망이나 이혼, 학대, 방임 등 이유로 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가 독립한 '자립준비청년'이다.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성인이란 이유로 아무 대책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해마다 2,400여 명이 그렇게 독립하지만, 절반은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세상의 벽은 높았다.
한국일보는 자립준비청년인 강한씨와 모유진(26)씨, 김지희(23)씨를 만나 이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절박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후배들은 우리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기회가 된다면 벼랑 끝에 몰린 후배들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가스 누출 사고에 곰팡이 화장실... 냉난방 작동법도 몰라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당장 살 집을 구하는 일이다. 500만~1,000만 원의 자립정착금과 5년간 매달 지급되는 35만 원의 수당만으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씨는 2017년 보육원을 나와 한 달 만에 보증금 500만 원짜리 월세방을 구했다. 그러나 보일러 켜는 방법조차 몰라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하며 덜덜 떨어야 했다. 그는 "보육원에선 선생님들이 냉·난방시설을 모두 관리해서, 보일러를 본 적도 없다"고 털어놨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잠을 자는데 한밤중에 자꾸 경보음이 울렸다. 한참을 버티다 112에 신고했는데 알고 보니 가스가 샌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세상물정 모르는 '열여덟 애어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립한 게 아니라 자립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의미였다.
김지희씨는 2018년 보육원을 퇴소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봤다. 그는 "집을 보러갔을 땐 가구에 가려 몰랐는데, 이삿날 확인해보니 벽지와 바닥이 곰팡이 천지였다"고 회상했다. 화장실은 아예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김씨는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에서 수리해준 뒤에야 이 집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2015년 위탁가정에서 나온 모유진씨는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머물 만한 월셋집을 구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모씨가 키우던 고양이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면서 주차돼 있던 고가의 외제차가 파손된 것이다. 보증금을 빼서 수리비를 물어주니 빈털터리였다. 모씨는 숙식을 제공해주는 일자리를 구해 잠자리를 해결해야 했다.
선제적 임대주택 연계·경제 교육 필요... "반짝 관심은 그만"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 살아온 자립준비청년들은 사기나 갈취 범죄에 노출되거나 경제관념 부족으로 돈을 쉽게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이구동성으로 시설을 떠나 정착하는 단계에서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LH 임대주택 같은 주거지를 동사무소에서 연결해주면 부동산 사기를 당하거나 이상한 집을 계약할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김씨도 "지출의 우선순위를 현명하게 정하지 못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걸 후회했다"고 밝혔다. 모씨 역시 "수백만 원짜리 매트리스를 충동 구매하거나 고가 정수기를 장기 대여했다가 고생하는 친구들을 봤다"고 안타까워했다.
자립준비청년의 비극적 죽음이 알려지면 온갖 대책을 쏟아냈다가 금세 잊어버리는 '반짝 관심'도 이들에겐 큰 상처로 돌아온다. 김씨는 "우리가 바닥까지 내려가야 국가는 잠깐 돌아봐줄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씨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힘들 때 먼저 도움 요청하길... 쉽게 포기 말자"
강씨와 김씨, 모씨는 자립을 당한 후배들을 향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허리 부상에 발목 수술까지 겹쳐 봅슬레이를 그만둔 강씨는 운동선수를 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자신보다 어린 자립준비청년에게 멘토 활동을 해온 모씨 역시 지난달 자신의 삶을 담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김씨는 무역회사와 목공소 일을 거쳐 최근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며 '새내기 대학생'으로 새 출발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서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로 불리는 김씨는 대학 졸업 후에도 남을 돕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강한씨와 김지희씨, 모유진씨는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처럼 시행착오를 겪으면 안 되잖아요. 힘들 때 숨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해요. 먼저 사회에 나온 우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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