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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주택정책, 잘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입력
2022.08.30 04:30
수정
2022.08.30 14:4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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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2020년 3월 말 '코로나와 도시주거'를 시작으로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했던 김진유 경기대 교수의 도시읽기는 이번 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42·끝> 주택정책과 도시계획, 전문가에게 맡겨야


‘잘 안다는 착각(Illusion of Knowledge)’은 자주 위험을 초래한다. 얼마 전 한 시민활동가는 방송에 나와 “최근 주택가격 하락을 보니 지난해까지 이어진 주택시장 불안이 공급부족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지난 정부 내내, 그리고 대선기간 중 대부분의 주택전문가와 대선후보들이 외친 주택공급확대는 근거가 없단 말인가. 도시계획 분야에서도 종종 인지편향이 발견된다. 도시계획을 공부한 적도 없으면서 관련 법을 좀 알거나 몇 가지 프로젝트 경험을 한 후에 마치 본인이 도시계획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착각은 전문가 의견으로 둔갑하여 주요 도시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할까.

멀리해야 할 주택시장의 선무당들

주택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지난해부터 있었다. 어떤 전문가는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는 전문가가 절대다수였고, 그에 따라 대선후보들도 앞다퉈 주택공급 확대를 공언했다. 결국 새 정부는 8월 16일, ‘27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가격 하락 국면에서의 공급확대 발표, 일견 모순적인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집값이 미쳤다’는 말은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주택시장을 표현하기엔 더 없이 적절하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이나 주택재고를 볼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공급확대를 주장한 것은 왜일까. 객관적 지표나 중장기적인 변화를 감안할 때 공급부족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1,000명당 주택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한참 모자라고, 가구수 증가만 고려해도 향후 5년간 약 100만 호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 보급률에 포함되지 않은 외국인 200만 명, 반지하에 거주하는 32만 가구를 고려하면 주택 부족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특히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주택수요는 단기적으로 급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출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면 수요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반면 규제완화나 금리 인하로 수요가 금방 살아나기도 한다. 그러나 주택공급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공급이 부족해 시급하게 대규모 신도시를 지정하더라도 실제 주택에 입주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공급부족이 발생하면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수요변화에 흔들리지 말고 꾸준한 공급을 통해 장기적으로 수급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주택전문가들의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 제안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진 선무당들의 말이 종종 정책혼선을 일으킨다. 이들은 남이 분석한 내용이나 부실한 정보를 보고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종종 중요한 정책에 반영되어 주거안정에 해를 끼친다. 우리나라는 주택관련 제도가 매우 복잡하고 자주 바뀌므로 항상 공부하고 깊게 분석하지 않으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단순히 외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정치적 소신에 근거해 부작용 우려가 많은 정책을 무책임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정책당국은 이들을 멀리해야 한다. 듣기엔 솔깃하지만 결국 주택시장을 왜곡시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주차장이 9일 오전 물에 잠겨 있다. 배우한 기자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주차장이 9일 오전 물에 잠겨 있다. 배우한 기자


도시계획의 위기와 인지편향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될 때 썼던 구호다. 이전에는 동네약사가 간단한 감기는 물론 일부 주요 처방까지도 직접 하는 경우가 흔했다. 한편 병원에서는 약사가 아닌 간호사가 약을 조제하기도 했다. 결국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항생제 오남용 등의 부작용들이 생겨났다.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하게 된 이유다.

그런데 도시계획 분야에서는 비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이 여전히 흔하다. 광역시나 도뿐 아니라 모든 시군에 ‘도시계획과’가 있지만 담당 공무원 중 도시계획을 전공한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 건축과나 토목과에 속한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해당 전공자인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비상식적이다. 도시계획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0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토목, 건축과 도시계획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각 도시의 도시계획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도시계획에 대한 무지 내지 무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데, 세종시 개발에서도 몇몇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상지 중앙의 금강 주변은 상습침수구역으로 사실상 도시로 개발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오송역은 너무 멀다. 또한 세계 어디에서도 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리 모양의 시가지도 도시계획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뚜렷한 중심이 없다는 측면에서 ‘평등’하기는 하지만, 상권형성이나 교통소통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니 말이다. 입지는 정치인이 결정하고 시가지 계획안은 건축가가 만들고 심사는 사회학자가 주도했으니, 도시계획적으로 미흡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스페인 건축가, 오르테가의 당선작 ‘천 개의 도시로 구성된 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스페인 건축가, 오르테가의 당선작 ‘천 개의 도시로 구성된 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2019년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기본계획안’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계획안에서 가장 황당한 부분은 심하게 굽은 도로인데, 도시계획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안이었다. 결국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반대로 실현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도시 서울에서조차 도시계획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심지어 ‘신도시계획’에 있어서도 도시계획은 무시되곤 한다. 신도시의 입지와 규모는 이미 수립된 장기적인 도시계획과는 무관하게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된다. 원래 계획된 도로나 철도망도 신도시가 발표되면 무효화되고 노선이 신설되거나 변경되기 일쑤다. 결국 도시계획은 누더기가 되고, 학교도 도로도 부족한 신도시에 입주한 주민들은 상당 기간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으니 당연히 도시계획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도시계획을 전문가들에게 맡겨 순리대로 했다면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세종시 계획에 깊이 관여한 저명한 도시계획가는 ‘경험 많은 계획가라면 절대 고르지 않는 최악의 입지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부작용의 상당 부분은 도시계획을 너무 쉽게 보고 조금 아는 사람도 본인이 ‘도시계획 전문가’라고 착각하는 인지편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도시계획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인지하고 진짜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더라면 분명 더 나은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얼마 전 대리수술이 또 한 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의 수술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간단한 수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외과의사가 되려면 수많은 지식을 익히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으려면 단지 수술 자체만 아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설령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의사자격이 없는 사람의 수술을 금지하는 것이며, 환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도시계획이나 주택정책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도 전문가들의 글과 말을 오래 접하다 보면 어느 정도 식견이 생긴다. 그러나 그 정도를 가지고 전문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 이론과 역사, 건축, 토목, 교통공학, 경제학, 사회학 등 많은 기초 학문을 익히고, 관련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면서 깊이 연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것 또한 자유다. 그러나 공적인 도시계획과 주택정책을 수립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건축은 건축가에게 토목은 토목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처럼, 도시계획은 도시계획가에게 주택정책은 주택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진정 주거안정을 바라고 바람직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정치적 입장이나 유명세에 현혹되지 말고 진짜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사말

그동안 우리 삶을 좌우하는 도시계획과 주택정책 이슈들에 대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매우 뜻깊고 보람 있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에 깊이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을 읽고 귀중한 의견을 주신 전문가들과 독자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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