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로 작품에 신체 접착하는 활동가들
"작품 위기 보며 기후위기 경각심↑" 주장
예술계에선 "둘 다 보호해야 하는 것" 반박
미술이 기후위기 활동가들의 '무기'가 됐다.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을 부각한다는 명분으로 유명한 미술품에 파손 위협을 가하는 시위가 번지고 있다. "예술을 아끼듯 지구도 아껴야 한다"고 역설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예술계에선 "그렇다고 예술을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격분하고 있다.
독일·영국·이탈리아... 곳곳서 작품에 본드 붙이기
기후위기 대응단체인 '마지막 세대' 활동가들은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게멜데 갤러리'에 걸린 작품에 본드로 손을 붙였다. 독일 작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04년 작인 '이집트로의 여정 중 휴식'이 표적이 됐다. 활동가들은 "화석연료 사용이라는 광기를 멈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같은 신체 부착 시위가 최근 자주 벌어지고 있다. 최근 독일 '슈타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니콜라 푸생의 '피라무스와 티스베가 있는 천둥∙번개 때의 풍경'(1651년)과 드레스덴 소재 게멜데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티나 마돈나'(1512년)가 공격을 받았다.
독일만의 일도 아니다. 지난달엔 영국 런던에서 '석유를 멈추라'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왕립 예술 아카데미와 국립 미술관을 대상으로 같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그림이 걸린 벽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노 뉴 오일(No New Oil)'이라고 쓰기도 했다. "화석연료 사업을 더 이상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바티칸, 피렌체 등에 있는 회화와 조각상이 본드 세례를 맞았다.
"기후위기 알리려면 필요" VS "위험하고 부적절"
기후 활동가들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작품을 보존하는 것처럼 지구와 환경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대중을 일깨우겠다고 주장한다. 그림 액자나 조각상 받침대 등 주변부에만 손상을 입힐 뿐 작품 자체를 훼손하는 건 아니라는 논리도 댄다.
이들은 미술품의 내용을 따져 시위 대상을 엄선한다. 영국의 '석유를 멈추라' 팀과 협업하는 시몬 브람웰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른다"고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이집트로의 여정 중 휴식'에 몸을 접착한 활동가들은 "그림 속에서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는 여정 중 쉬고 있지만, 인간은 기후 재앙 속에서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메시지가 활동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술계는 분노한다. 대의가 아무리 좋아도 미술품에 훼손을 가하는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독일 문화예술단체를 총괄하는 문화위원회의 올라프 짐머만 이사는 "작품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행위이자,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라며 "작품은 기후와 '함께'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AP에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