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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쪽마늘 성지 가의도... 한참 걷다 보면 '서해의 하와이'

입력
2022.08.26 04: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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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그 섬에 가다 : 태안 가의도
태안 토박이들도 많이 가보지 않은 섬
남풍 불면 북항, 북풍 부는 겨울엔 남항
육쪽마늘 농법, 국가농업유산 등재 추진
광어낚시의 성지로 낚시꾼 발걸음 분주
가의도 와이키키 신장벌은 접근 어려워
둘레길 등 늘리면 젊은이들 정착도 기대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의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서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 항공사진. 서해안 섬치고는 주변 수심이 깊어 다양한 어류가 서식한다. 강태공들 사이에선 성지로 소문이 났고, 최근에 트레킹 코스도로 각광받고 있다. 태안군 제공

서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 항공사진. 서해안 섬치고는 주변 수심이 깊어 다양한 어류가 서식한다. 강태공들 사이에선 성지로 소문이 났고, 최근에 트레킹 코스도로 각광받고 있다. 태안군 제공

'서해의 하와이'.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작은 섬, 가의도는 분명히 이 공감각적 표현 덕을 봤다. 태안에서 나고 자란 군청 공무원 중에서도 아직 그 섬에 안 가봤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통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태평양 복판의 하와이 같은 섬이 서해에 있을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지만, 동경심과 호기심 사이 그 어디쯤 불이 붙으면 결국 한번쯤은 움직이게 된다.

가의도로 가는 배는 ‘섬’에서 출발한다. 1995년 다리(신진대교)로 연결되면서 지금은 육지와 다름없는 신진도의 안흥여객선터미널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인근에 마련된 임시대합실 컨테이너에서 표를 구입해 배에 오른다. 외지의 성인 기준으로 왕복 6,200원이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항 한쪽에 마련된 가의도 여객선 대합실. 4년 전 새로 건조된 차도선이 하루 세 차례 육지와 섬을 오간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항 한쪽에 마련된 가의도 여객선 대합실. 4년 전 새로 건조된 차도선이 하루 세 차례 육지와 섬을 오간다.

가의도는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이다. 덕분에 1ㆍ4 후퇴 때 피란민들로 북적였다. 그야말로 섬 속의 섬이다. 19일 오전 신진항을 출발한 배는 25분 만에 가의도 북항에 손님과 짐을 부렸다. 가의도호 이기동(49) 선장은 “남쪽에서 바람이 부는 여름철엔 섬 북쪽에 배를 대고, 북풍의 겨울엔 남항으로 접안한다”며 “그땐 15분이면 닿는 가까운 섬”이라고 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던 50인승 여객선을 대체해 4년 전 차도선(여객과 차량, 화물을 동시에 싣는 배)으로 건조된 가의도호는 하루 세 차례 왕복한다. 차량 6대와 승객 94명을 동시에 실을 수 있다. 차량을 실을 땐 사전 예약이 필수지만, 섬이 작고 길이 좁아 일반 관광객이 섬에 굳이 차량을 끌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가의도 북항에 닿으면 제일 먼저 만나는 '마늘환영벽'. 가의도는 토종마늘인 육쪽마늘의 원산지지만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언제까지 육쪽마늘 원산지 명성을 이어갈지 알 수 없다.

가의도 북항에 닿으면 제일 먼저 만나는 '마늘환영벽'. 가의도는 토종마늘인 육쪽마늘의 원산지지만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언제까지 육쪽마늘 원산지 명성을 이어갈지 알 수 없다.


하와이로 불리는 마늘섬

북항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타일 조각으로 마감된 넓은 벽이 객을 맞는다. 입도 환영 문구와 함께 육쪽마늘 원산지임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벽이다. 이 선장은 “6월 중순~7월 중순 마늘을 사러 전국에서 온 사람들을 태우고 들어간다”며 “나올 땐 그들이 배에 마늘을 싣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다. 농경지 4만3,000㎡에서 매년 5~16톤의 육쪽마늘이 생산된다. 양이 적어 대부분 마늘 농가의 씨마늘로 이용된다.

하늘색으로 칠해진 마을 골목길 바닥에 그려진 육쪽마늘. 8월 현재, 씨마늘을 심기 위한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가의도 밭은 대부분 마늘 밭이다. 연 15톤가량 생산돼 육지로 나간다.

하늘색으로 칠해진 마을 골목길 바닥에 그려진 육쪽마늘. 8월 현재, 씨마늘을 심기 위한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가의도 밭은 대부분 마늘 밭이다. 연 15톤가량 생산돼 육지로 나간다.

수확이 마무리됐다면 섬의 8월은 농한기일 수 있겠다. 그러나 차차 펼쳐지는 마을 풍경은 외지인들의 통념을 보기 좋게 걷어차 버린다.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밭은 한결같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그곳에선 주민들이 마늘을 심느라 시선 한번 주지 않는다. 가의마을 주만길(67) 이장은 “밭을 간 뒤 시비 작업과 함께 마늘 심는 작업이 한창이고, 씨를 다 뿌린 뒤에야 섬에는 여유가 찾아온다”며 “지금 같은 풍경도 10년 뒤면 없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2.19㎢ 면적의 가의도에는 50가구 76명(8월 8일 기준)의 주민이 등록돼 있지만, 70세 미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태안군도 이 같은 분위기를 안다. 태안군 관계자는 “한국 대표 토종마늘 종자 생산지가 바로 여기”라며 “전국적 명성의 육쪽마늘과 가의도가 지속할 수 있도록 육쪽마늘 농법을 국가 농업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전 정년퇴직 후 가의도로 들어와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주만성(83), 유춘자(82)씨 부부가 서해 바다를 등지고 밭에 앉아 마늘을 심고 있다.

20년 전 정년퇴직 후 가의도로 들어와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주만성(83), 유춘자(82)씨 부부가 서해 바다를 등지고 밭에 앉아 마늘을 심고 있다.


마늘섬에서 낚시ㆍ트레킹 성지로

가의도 육쪽마늘은 자생력이 좋아 씨마늘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다. 하지만 태안군의 마늘 육성 정책도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육쪽마늘의 미래도 장담하기 힘들다.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뒤 가의도로 귀향,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주만성(83)씨는 “눈을 씻고 봐도 섬에선 젊은 사람들이 할 만한 일거리가 없어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며 “어떤 식으로든 가의도로 청년들이 다녀가게 하고, 그러다 보면 정착하는 젊은이들이 생기지 않겠냐”고 했다. 이 섬에서 제일 젊은 사람 7명은 모두 가의도 발전소 직원이다.

가의도를 찾은 관광객이 항구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바람(파도)이 적고 물때가 맞으면 어린아이들도 제법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가의도는 낚시 성지로 입소문이 났다.

가의도를 찾은 관광객이 항구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바람(파도)이 적고 물때가 맞으면 어린아이들도 제법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가의도는 낚시 성지로 입소문이 났다.

그래도 낚시, 트레킹 붐과 함께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11개 객실을 갖춘 한 펜션 주인은 “성수기 비수기 할 것 없이 주말이면 일찌감치 만실이 된다"며 "한겨울을 제외하면 주중에도 낚시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섬을 찾아 묵고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실제 여름휴가 성수기 끝물이던 이날도 입도객 대부분이 낚시 장비를 갖고 배에서 내렸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 온 여승호(42)씨는 “우럭 광어 농어가 많이 잡히고, 그중에서도 광어는 ‘담그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낚시꾼들 사이에 성지로 소문 난 만큼 보다 많은 이들이 안전하게 낚시하고, 편안하게 머물다 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마늘과 관광에 미래 걸자”

육쪽마늘의 본산, 광어 낚시의 성지는 이럴진대, ‘하와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주민들은 “웃자고 누군가 한 소리가 퍼진 것”이라면서도 가장 하와이다운 장소로 한 곳을 공히 꼽았다. 섬에서 유일하게 모래사장을 갖춘 섬 동쪽의 신장벌이다. 가의도가 하와이라면, 와이키키 비치에 해당하는 곳이란 뜻이다. 독립문바위 등 볼거리가 있고 길이는 200m 남짓 된다.

가의도 동쪽에 있는 해변, 신장벌로 가는 길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쓰러져 있다. 섬을 찾는 이들이 한번씩 가봤으면 하는 해변이지만, 가는 길이 이처럼 험하다.

가의도 동쪽에 있는 해변, 신장벌로 가는 길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쓰러져 있다. 섬을 찾는 이들이 한번씩 가봤으면 하는 해변이지만, 가는 길이 이처럼 험하다.

그러나 이 해변으로 가는 1.5km 길이 만만치 않다. 섬 전체가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육지 사람들이 가의도를 찾으면 가장 들르고 싶어하는 곳이지만, 길이 거칠어 웬만한 어른도 엄두를 못낸다. 아이들이 있다면 아예 가지 않는 게 좋다.

섬을 찾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여전히 방치되다시피 한 이런 부분은 섬에 발붙이고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도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한 주민은 “우린들 그걸 깨끗하게 안 해놓고 싶겠냐”며 “외지인들이 ‘길을 좀 다듬으면 좋겠다’는 민원을 넣다 보니 그나마 가지치기와 제초 작업이 이뤄져 길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가의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대신 사발이(네 바퀴 오토바이)가 주력 교통수단으로 활약한다.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짐을 옮길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가의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대신 사발이(네 바퀴 오토바이)가 주력 교통수단으로 활약한다.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짐을 옮길 때 요긴하게 쓰인다.

육지에서 정년퇴직한 뒤 8년 전 가의도로 귀향한 주갑철(69)씨는 “5,6년 전부터 섬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특히 전에 볼 수 없던 트레킹 동호인들이 단체로 섬을 찾고 있다”며 “둘레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섬 곳곳을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다듬고, 안내판도 좀 더 세우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 그대로도 좋지만 편의시설을 조금만 확충하면, 가의도를 찾는 이들이 늘고 섬에 정착하는 젊은이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가의도는


위치 :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인구 : 50가구 76명
주요 산물 : 육쪽마늘, 홍합

충남 태안 가의도 위치. 그래픽= 송정근 기자

충남 태안 가의도 위치. 그래픽= 송정근 기자


휴가를 마친 여행객들이 육지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바닥에 이끼가 끼어 상당히 미끄럽다.

휴가를 마친 여행객들이 육지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바닥에 이끼가 끼어 상당히 미끄럽다.


가의도호 이기동 선장이 객실 방송을 하고 있다. 관계 기관, 가의도 마을 이장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안전 운항에 힘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선장은 "날씨 때문에 배가 못 뜨는 날 빗발치는 민원에 대응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민원은 주로 '섬에다 내려다 놓고 왜 안 데리러 오느냐'는 것이다.

가의도호 이기동 선장이 객실 방송을 하고 있다. 관계 기관, 가의도 마을 이장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안전 운항에 힘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선장은 "날씨 때문에 배가 못 뜨는 날 빗발치는 민원에 대응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민원은 주로 '섬에다 내려다 놓고 왜 안 데리러 오느냐'는 것이다.


가의도=글·사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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