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신드롬'의 주역 박은빈
"어릴 때부터 투철했던 책임감"
영향력 실감한다는 27년 차 배우
잘 만든 작품 한 편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랜 시간 남아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 된다. 휘발성 감동에 그치지 않고 긴 여운의 싹을 틔우는 작품들이 '명작'으로 남는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그렇다. 작품은 종영했지만, 시청자들은 우영우를 그리워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우영우가 나타나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우영우 신드롬'이다. 극 중 영우가 좋아하는 고래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각종 콘텐츠는 물론 웹툰과 뮤지컬 등 문화계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과시 중이다. 최근 넷플릭스 전 부문을 통틀어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막을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인기의 중심엔 우영우 변호사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이 있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올해 데뷔 27년 차가 된 그는 섬세한 연기와 완벽한 캐릭터 표현력으로 단숨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박은빈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박은빈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데 부담감은 없나.
"부담감이 많다. 나는 인식 개선이나 현실 타파 같은 거창한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배우로서의 영향력이 있다고 인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드라마를 할 때 신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는 것이 도의적 책임이 느껴지는 일 같다. 이 작품이 종영된 시점부터가 중요한 거 같다. 세상이 '우영우 신드롬'이라 이름 붙여준 만큼 앞으로 좋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울림을 받은 대사가 있을까.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가 이 드라마가 영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꼭 자폐인 분들을 넘어서 이 세상에 지금 흰고래 무리들과 섞여 살아가는 수많은 외뿔 고래들이 있지 않나. 그 안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영우가 이 모든 감정을 뿌듯함이라고 자각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비로소 마지막에 깨달은 감정이 '뿌듯함'이라는 단어였다는 것이 좋았다."
-27년 차 배우로서 후배들과 호흡은 어땠나.
"27년 차라 해도 모두가 후배인 것은 아니다. 난 사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왔고 선배를 잘 모시긴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이 모였기 때문에 (강)태오 같은 경우 굉장히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다. 사람이 수용성이란 느낌이 든달까. 의견을 잘 청하는 편이고 감독님의 섬세한 디렉팅이나 옆에서 상대 파트너로서 느껴지는 것들을 얘기하면 잘 받아들이고 함께 좋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전배수가 박은빈이 코로나19 기간 촬영 중 식사도 혼자 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다던데.
"기질적인 성향도 있기는 하다. 책임감이 좀 어릴 때부터 투철했던 거 같다. 내가 해야 할 몫을 항상 정확히 알고 있던 편이다. 전배수 선배가 좋게 얘기해 줘서 감사하지만 모든 걸 차단하고 오로지 연기로만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옥죄어 살고 있지는 않다. 나름 숨구멍도 있고 균형감을 잘 알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 에너지를 충족시키고 배출해야 할지를 안다. 연기할 때 에너지가 필요하단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를 비축함으로써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그런 균형감을 말한다. 코로나 상황은 특수했기 때문에 세 작품을 연속으로 하면서 유효했던 도시락 투쟁이었다. 특히 '우영우'의 경우 내가 없으면 날 제외한 다른 대체 분량이 거의 없어서 주의를 기울였다."
-박은빈의 숨구멍은 무엇인가.
"작품이나 캐릭터를 보내줘야 할 때 훨씬 압축적인 희로애락을 겪어내야 한다. 그래서 항상 한 작품 한 캐릭터를 끝내면 소진이 되어있거나 백으로 차있는 거 같다. 그랬을 경우에 인간 박은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잘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 작업은 사실 별거 없고 캐릭터의 스위치를 꺼두면 금방 돌아온다. 캐릭터와 나 자신을 구별할 줄 알게 됐다. 건강한 자아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역할의 여운에 빠져서 내 삶을 놓친다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영우의 상황은 아역배우로 출발한 박은빈의 성장 과정과 비슷한 결로도 볼 수 있을까.
"일각에선 내게 왜 이렇게 도전을 좋아하냐더라. 요근래 어려운 역에 도전한단 인상을 받았나 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인간 박은빈은 안정적인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맞다. 불안한 거 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게 맞지만 배우로서는 새로운 걸 시도해 보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 된다. 새로운 성취감이 들게 하는 작업인 거 같다. 실패가 내 인생 전부는 아니라고 믿게 하는 확신이 있다. 도전이 두려운 만큼 도전을 해보게 하는 과정 중에 있다. 분명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실패라고 할 수 있을만한, 교훈으로 삼을만한 상황이라 여겼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음 단계로 넘어오다보니 '우영우'로 사랑 받는 날이 왔다. 슬럼프도 언젠가는 있었겠지만 지나고 보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희귀혈액형(RH-A형) 때문에 각별히 건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요즘 가짜 뉴스도 그렇고 나에 관련한 정보의 포화상태를 겪다 보니 혈액형이나 신상 관련해서도 그런 게 많더라. 박은빈은 조심하는 사람, 혈안이 돼있는 사람처럼 알고 계신 분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무근이다. 그럴 정도로 걱정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내가 연기를 위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내 나름대로의 균형 속에서 재밌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와 관련해서 연기에 대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점은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 대해서 너무 성인으로 생각하진 않아줬음 좋겠단 생각이다. 혈액형은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정확히 잘 모르겠다."
-'우영우'가 배우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가.
"물론 '우영우'로 큰 사랑을 받았다고 객관적 평가를 해주시지만 개인적 의미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고 모든 캐릭터를 사랑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아픈 손가락이고 애착이 간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대중적 사랑을 받은 건 맞지만 2022년에 큰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인생 캐릭터라고 칭해주시는데, 나는 크게 변한 거 없이 살아갈 거 같다."
-시즌 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시즌 2에 대해 정식으로 들은 것이 기사를 통해서였다. 사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너무 불확실하기도 하다. 제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제가 '우영우'에 투입될 때의 마음보다 훨씬 더 큰 결심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물상자 안에 잘 넣어둔 느낌인데 그걸 다시 열어야 된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지금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훼손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속 시원한 답변을 드릴 순 없지만 배우로선 다시금 어렵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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