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 잃어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 기업에 책임 묻겠다"
해당 기업은 "입증 어려울 것"이라며 무대응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파리섬(플라우 파리·Pulau Pari)에서 살아가는 에디 몰료노(37)의 표정은 어두웠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유능한 어부였던 그는 현재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다.
섬 연안에 지척으로 널렸던 고등어와 참치 등을 잡을 수 있었던 1990년대에만 해도 하루 25만 루피아(약 2만1,000원)는 거뜬히 벌었던 그였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극심해진 2000년대부턴 우기와 건기가 불분명해지고 물고기들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섬을 찾는 관광객이 있어 이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면서 연명했지만, 2019년 이후에는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그해 처음으로 바닷물이 집 안까지 들이닥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을 공동우물도 바닷물에 오염돼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살아갈 섬 지키겠다" 국제소송 나선 파리섬 주민들
참다못한 에디와 파리섬 주민 3명은 지난달 22일 세계 1위 시멘트회사 '홀심(Holcim)'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거대 기업에 환경 파괴의 책임을 묻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겠다는 취지다. 소송은 홀심의 본사가 있는 스위스 법원에 접수됐다.
홀심이 에디의 소송 상대로 지목된 건 이 회사의 막대한 탄소배출량 추정치 때문이다. 23일 유럽헌법인권센터(ECCHR) 등에 따르면, 홀심은 지난 100년 동안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70억 톤(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수치는 같은 기간 발생한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0.4%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에디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환경포럼의 데위 푸스파 법률부문장은 "에디와 같이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해수면 상승을 유발한 기업들에 환경 정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홀심의 생산 활동과 파리섬의 해수면 상승 연관성 등을 입증해 이산화탄소 배출 기업들에 명확한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디 역시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처럼 계속 해수면이 상승하면 우리 아이들은 30년 안에 섬을 잃게 될 것"이라며 "나처럼 물고기만 잡을 줄 아는 아이들을 위해 바다를 지키는 싸움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입증 어려울걸?…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홀심
홀심은 에디의 소송에 심드렁한 반응이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률적 인과관계 입증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홀심은 소송 제기 직후 "우리 회사는 세계적인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짧은 논평만 내놓았을 뿐 추가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홀심은 2015년 자신들과 시멘트 생산 '양강(兩强)'이었던 프랑스 기업 라파지를 합병한 후 독보적인 업계 1위에 올라선 상태다. 현재 홀심은 전 세계 70개국에서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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