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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모녀' 비극... 생활고에 건보료 16개월 밀렸는데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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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모녀' 비극... 생활고에 건보료 16개월 밀렸는데 아무도 몰랐다

입력
2022.08.22 18:24
수정
2022.08.22 18:40
10면
0 0

다세대주택서 부패 심한 상태로 시신 발견
유서 9장에 질병, 빈곤 등 오랜 생활고 토로
이웃 교류 없고 전입신고 안돼 복지혜택 無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시 권선동 다세대주택 문에 경찰이 22일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 테이프를 붙여 놨다. 박지영 기자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시 권선동 다세대주택 문에 경찰이 22일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 테이프를 붙여 놨다. 박지영 기자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 모녀가 난치병 등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료도 16개월어치나 내지 못할 만큼 생활고는 극심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러 차례 엿보인 ‘비극의 전조’를 그냥 지나쳤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반복되고 있지만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

유서에 '몸 아프다' 신병 비관... 극단적 선택 무게

22일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 따르면 21일 오후 2시 50분쯤 수원 권선구 한 골목에서 “세입자 집에서 악취가 나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이 문을 강제로 여니 60대 여성 A씨와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신원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냉장고 음식물 유통기한과 휴대폰 사용 내역 등 생활반응을 통해 사망 시점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A씨와 작은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내용이 근거다. 가족은 A4용지 크기 노트 9장에 듬성듬성 쓴 글씨로 ‘경제적으로 힘들다’ ‘몸이 아프다’ 등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료 1년 넘게 밀려도 아무도 몰랐다

세 모녀는 경기 화성시에 있는 지인 집에 주소를 등록해 놓고, 2020년 2월 현재 주거지로 이사했지만 전입신고는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건보료를 내지 않았다.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화성 기배동 주민센터 측은 지난달 전산에 건보료 체납 사실이 뜬 뒤에야 같은 달 19일 안내문을 발송했고, 이달 3일 주소지를 직접 찾았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집에 가보니 한 지인이 세 모녀는 여기 안 살고, 연락도 안 된다고 했다”며 “상황이 이러면 우리도 실거주지를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건보료가 밀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자체에, 지자체는 다시 주민센터에 통보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관계 기관들은 16개월 만에 대응에 나선 것이다. 건보공단 측은 “보험료가 월 10만 원 미만인 사람이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지자체에 통보한다”면서도 “연체자가 많아 지자체가 전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 A씨의 집 앞에 가스 점검원이 남긴 메모지가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22일 A씨의 집 앞에 가스 점검원이 남긴 메모지가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수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서 내용과 지인들 증언을 종합하면, 큰딸은 하루에 12시간씩 경련을 하는 중병을 앓았고, 입원 생활도 길었다. A씨 가족을 본 이웃들은 하나같이 “딸이 한 명뿐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최근에는 A씨도 암 투병 중이었다. 신고자인 집주인 자녀 B씨는 “올봄에 작은딸이 어머니도 아프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살았던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2만 원이었는데 숨지기 직전인 6월 월세도 한 달 늦게 냈다. 당시 딸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비 때문에 늦어졌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A씨 집 벽엔 “귀가하면 꼭 연락 달라”며 요금 체납을 짐작하게 하는 가스 점검원의 메모도 붙어 있었다.

이곳 지자체도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권선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숨진 가족이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다”면서 “전입신고라도 했다면 확인 방문을 통해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류마저 단절... '찾아가는 복지' 무색

오랜 생활고 탓에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는 전형적 특징도 보였다. 사건 전까지 이 가족을 아는 주변 이웃은 거의 없었다. 같은 골목에 사는 60대 남성은 “어제 경찰이 와서야 사람이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B씨도 “집주인인 어머니조차 A씨 가족 얼굴을 본 게 지난 2년간 한 번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가족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찾아가는 복지’를 다짐하지만, 복지망은 여전히 성글다는 게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박지영 기자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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