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스공급 감축 보복으로 에너지 대란
마지막 원전 3기 올해 말 폐쇄 계획 수정
기후위기 대응을 주도해온 독일이 탈원전을 잠정 포기했다. 올해 말 폐쇄하려던 원자력발전소(원전) 3기의 가동을 연장하기로 사실상 결정하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대란의 파고를 넘지 못한 것이다.
"원전 3기 가동 연장은 기정사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독일이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폐쇄 일정을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복수의 독일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 격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럽에 판매하는 가스 공급량을 확 줄인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원전 가동 연장은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내각의 승인 절차만 남았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WSJ가 인용한 정부 관계자들은 "에너지 필요량에 대한 평가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면서도 "가동 연장은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도 지난 3일 "원전 3기를 계속 가동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정치적 걸림돌도 별로 없다. 탈원전 정책을 강력 지지하는 녹색당마저 원전 가동 연장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녹색당 고위 인사인 루드비히 하르트만은 "전력 부족 위기에 직면하면 몇 개월 정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여론조사기관 포르자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독일 국민 4분의 3이 원전 수명 연장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재개하지 않는 한 겨울 난방 가스비 폭등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20여 년 탈원전 기조 벗어나는 첫발 될까
수명을 연장하게 된 원전 3기는 엠스란트,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이자르 2호기로, 독일 전체 전력 생산의 6%를 차지한다. 다만 무기한 가동 연장은 아니다. 에너지 위기가 잦아들 때까지 임시 연장일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이미 해체된 원전의 재가동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원전 노선의 전면 수정은 아직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파장은 상당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원전 의존도를 단계적로 줄여 온 정책 기조에서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자처해온 '글로벌 에너지 리더십'에도 상처가 나게 됐다. 독일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탈원전에 속도를 내 현재까지 총 26기의 원전을 영구 폐쇄했고, 올해 말까지 모든 원전을 닫기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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