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대통령이라도 용의자라면 수사 마땅"
"한국, 전직 처벌하고도 정체 유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하면서 미국도 '정치 보복' 논란에 휩싸였다. 당장 지금까지 미국 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자체가 없었던 전례에 비춰지면서다. 수사 대상으로 가장 근접했던 '워터게이트'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조차 자진사퇴 직후 후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사면으로 수사 대상에서 벗어났다.
공화당은 "바나나 공화국(중남미의 부패한 독재국가를 가리키는 은어)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이라며 트럼프 보호 전선을 펼쳤다. 민주당 측에서조차 "1월 6일 의사당 침탈 사건 조사의 정당성을 잃을 것(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 "선거운동만 해주는 게 아니냐(앤드루 양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후보)"는 말이 나온다.
이에 자유주의 성향이 짙은 워싱턴포스트와 블룸버그 등에선 트럼프 수사의 정당성을 다른 민주 국가에서 찾았다.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좋은 예'에선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임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처벌해 수감한 바 있는 한국 사례가 소개됐다.
전직 대통령 처벌 '좋은 예'로 꼽힌 한국
이샨 사루어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는 지난 9일 발행된 분석 글을 통해 "미국에서만 전례가 없을 뿐,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가 이전 지도자를 조사하고 유죄를 선고하고 수감하는 것은 정상"이라면서 "그 누구도 법의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초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어진 분석에선 한국이 소환됐다. "아시아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 국가 중 하나이지만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면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임 대통령이 수감됐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두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수감됐지만, 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부패했다는 뜻도 아니고, 공고화한 민주주의의 약점을 드러낸 것도 아니다"라며 "미국처럼 양극화한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폭풍을 이겨 내고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비 고시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역시 "전 국가 수반이 법의 심판대 위에 서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민주화가 완료된 1987년 이후에도 한국의 전직 대통령 3명(이·박·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감됐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의 수감이 반드시 후임의 범법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 보복 성격의 수사가 만연했다거나, 민주 정치에 대한 환멸이 특별히 강해졌다거나, 내전으로 붕괴됐다거나 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의 사례를 인용,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사로 처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민주 정치 자체에 극도의 혼란이 유발되진 않을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린 셈이다.
처벌 불충분 이탈리아, 정치 보복 의혹 브라질... '나쁜 예'도
하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이 외려 '지나치게 좋은' 사례일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그 자체로 권력자이자 상징성 짙은 인물인 전직 국가수반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쉽지 않고 논란도 많다. 이 점은 두 칼럼에서 "전직을 처벌한 민주주의 국가"라며 제시한 사례들을 점검해 봐도 알 수 있다.
후임 대통령 임기에 전직을 부패 혐의로 처벌한 대표적인 사례는 브라질인데, 정치권 부패가 만연하고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 보복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일명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에 연루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징역형을 살았고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으며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은 기소됐다. 하지만 이들의 공백에서 정권을 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역시 "다음 대선에서 지면 난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본인 입으로 공공연히 할 정도로 온갖 부패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오히려 '억울한 수사를 당했다'는 이유로 차기 집권이 유력하다.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부정회계와 탈세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가벼운 형에 그쳤으며 정치적 복권에도 성공했다. 반대 진영에선 그가 여전히 유력한 정치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본래 언론 재벌로 이름을 떨쳤고 현재도 우파정당 '전진 이탈리아'의 당수를 맡고 있다.
대만의 천수이볜 전 총통은 지난 2009년 뇌물 수수 및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을 살던 도중 2015년 가석방됐다. 천 전 총통은 '대만 독립론'을 주장한 데 대한 괘씸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바 있다. 현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사면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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