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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은 자살시도를 돕지 않는다

입력
2022.08.08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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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연명의료중단 등록 후 농약음독 남성
환자 가족마저 회생치료 중단 요구
의료진은 회생 가능성만 보고 거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 70대 후반 남성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 곁에서 발견된 농약은 소량만 복용해도 치명률이 높은 제초제가 아닌 살충제 계통의 약제였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은 신속하게 환자의 위장을 세척하고 해독제를 투약했다.

위독한 상황을 겨우 넘긴 환자는 '주먹을 쥐어 보세요' 하면 반응을 보이는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폐렴이 발병하여 저산소증이 생겨 인공호흡기가 필요했고 중환자실로 입원하였다.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치료를 3주간 시행했으나, 일반병실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적극적 치료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치료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기에, 환자의 가래 제거와 산소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목 부위를 수술해 공기 통로를 확보하는 기관절개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의료진이 설명하자 가족들은 더 이상의 추가적인 시술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 환자가 직접 작성해 놓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언급하며 모든 치료를 중단하는 문제까지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환자는 음독하기 3개월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거부한다는 서류를 작성하여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 등록해 두었고,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도 알렸다. 수년 전부터 인지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울 증세에 시달려 왔던 환자는 죽고 싶다는 말을 평소에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의료진 입장에서 판단했을 때, 속도가 느리긴 하였으나, 환자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 상태였고 중환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료행위들은 환자의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료진은 환자 가족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의 연명의료중단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중환자실 입원 4주 차에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고, 폐렴도 호전되어 기관절개술을 시행하지 않고, 다른 합병증 없이 기관내삽관도 제거할 수 있었다. 5주 차에는 더 회복되어 요양병원으로 전원하였다.

이 사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자살을 쉽게 하려는 방법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서류를 미리 써 두면, 자살 시도 후 발견되어 병원에 가더라도 자신을 살리기 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은 불치병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임종 과정에 이르러,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불필요하게 고통 받지 않기를 원한다고 명확히 의사 표명을 했을 때만, 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 자연적 죽음이 아닌 고통 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의료진도 환자가 등록해 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존재를 전산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하였다. 환자의 가족들이 요구해도 환자 상태가 연명의료중단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의료진이 판단하면 연명의료중단을 할 수 없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의료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 생명을 살리려 노력하여야 한다. 이런 생명 존중의 원칙과 환자가 무의미한 의료행위는 거부할 수 있다는 자기결정권 사이에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법이지, 자살을 돕는 법은 아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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