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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무당의 나라'

입력
2022.08.03 19:00
수정
2022.08.04 09:2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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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일
전형일명리학자·철학박사

편집자주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했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무당(巫堂)은 '귀신을 섬겨 길흉(吉凶)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주로 여자를 이른다'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巫(무)는 '공(工) 자의 양측에 두 사람(人)이 춤을 추는 형상을 취한 것으로 춤을 통하여 신을 접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이처럼 무당은 춤으로써 무아의 경지에서 신과 접하면서, 신의 의사인 '공수(神託)'를 인간에게 계시해 주고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고하는 영매자(靈媒者)다.

유령이 된 남자의 애절한 사랑으로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사랑과 영혼(원제 Ghost)'에서 사이비 점성술사 오다 매 브라운(우피 골드버그 분)이 한국식으로는 무당이다.

무당은 가장 보편화된 명칭이며 지역별로 무인(巫人), 무격(巫覡), 무녀(巫女), 기자(祈子), 무당 각시, 만신, 단골, 심방이라고도 한다. '단골집'이란 용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또 남자 무당을 지칭할 때는 격(覡), 박수, 화랭이, 양중이라고도 불렀다.

무당이라고 해서 모두 '공수'를 듣는 것은 아니다. 무병(巫病) 또는 신병(神病)을 겪고, 신력(神力)에 의지해 무업(巫業)을 하는 강신무(降神巫)만이 '공수'를 받는다. 주로 한강 이북 지방의 무당이 이 유형에 속한다. 반면 신들리는 현상 없이 조상 대대로 가업인 무업을 이어받은 세습무(世襲巫)가 있다. 세습무는 대개 한강 이남 지방에 많았다.

현대 들어 그 구분은 크게 없어졌으나 굿의 종류는 세습무가 더 다양하다. 예를 들어 충청도의 굿은 '법사'라는 남자 무당이 경을 읽는 식이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했던 소망이나 원망 등 한(恨)을 씻어내는 국가무형문화재인 '진도씻김굿'도 세습무의 한 종류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주술인 샤머니즘(shamanism)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원시 종교'다. 이때 영적인 존재와 인간을 중재하는 사제가 '샤먼(Shaman)'이다. 그들은 문화에 따라 제사장, 주술사, 무당 등으로 불리는 정신적 지도자였다.

단군(檀君)이라는 명칭도 고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관인 천관(天官)을 말한다. 초기 부족 연맹체 국가인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등 제천의식은 당시 정치·종교 지도자였던 '무(巫)'가 주도했다. 이후 제(祭)와 정(政)이 분리되면서 무는 사제·예언·치병(治病) 및 유희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상고시대부터 전통 신앙 역할을 했던 '무'는 신유학인 성리학(性理學)에 의해 공식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197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주자학(朱子學)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 온 안향(安珦)이 어느 마을에 사또로 부임해 그 마을의 무당을 쫓아냈다는 얘기가 실려있었다. 더욱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무교(巫敎)를 폄하하고 저속하다는 의미로 '무속(巫俗)'이라 불렀다.

무교는 유교(儒敎)를 국교로 표방한 조선시대 들어 쇠락한다. 당시에 무당은 사회 최하층으로, 팔 천민의 하나가 됐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무당은 구병(救病) 활동 등에 동원됐으며 이를 위해 궁궐에도 출입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임금이 거처하는 곳에서부터 주읍까지 모두 주무(主巫)가 있어 마음대로 출입하니 미풍은 여전하다"고 기록했다. ('성호사설(星湖僿說)')

특히 치병의 기능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라 유리왕 19년(42) 9월 왕이 병에 걸렸을 때 무당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시대에도 세종 때 열병이 유행하자 세종은 무격들을 동원해 병을 고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구병에 힘쓴 무격에 대해서는 무세(巫稅)를 감해주고 부역을 면제했으나 구병 활동에 힘쓰지 않는 무격들을 크게 벌했다는 것도 기록에 남아있다.

특히 고종 황제비인 명성황후는 전국적으로 무당들의 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한 임무를 담당한 특정 무당에게 '진노군'이라는 직위까지 부여했다. 하지만 이후 일제는 한국인들의 민족의식 말살 정책으로 민중 종교인 무교를 탄압한다. 이어 박정희 정권도 무교를 미신으로 치부하며 배격하였으나 그 생명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 대학교 박일영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착 종교는 무교라고 함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처럼 샤머니즘의 고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은 별로 없다는 게 오히려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굿은 구성이 잘 짜여 있고 노래와 춤 그리고 의상은 아름답다. 판소리도 남도 굿판인 시나위 판에서 유래했다. 고유의 K-문화 자산이다. ('무교(巫敎)')

일본은 고유 신앙인 신도(神道)를 미신으로 비하하지 않는다. 지금도 생활화하며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배우자 '법인카드 유용 의혹' 참고인 사망 공방에서 "무당의 나라"라고 발언했다. 사건의 인과 관계나 내용의 정황상 '무당' 등장은 뜬금없다.

사이비 술사와 무당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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