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삶을 수선하며 삶의 곡예를 서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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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삶을 수선하며 삶의 곡예를 서핑한다"

입력
2022.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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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배우 한 사람이 10여 개의 캐릭터를 모두 소화하는 1인극이다. 홀로 무대에 선 배우를 음향과 영상, 조명이 돕는다. 프로젝트그룹일다 제공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필자는 이 연극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예매 사이트를 둘러볼 때도, 기존 리뷰를 살피기 위해 포털에서 검색할 때도 꼭 제목을 틀리게 입력했다. '살아있는'을 '살아남은'으로 검색하거나, 서술어 '수선하다'는 종종 떠올리지 못해 '살아남은 뭐였더라' 하고 머뭇거렸다. 그만큼 제목의 의미를 명확히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는 차가운 파도를 헤치며 서핑을 즐기던 청년 시몽이 서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의 심장 이식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이다. 뇌사 환자의 장기 이식에 필요한 절차와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심지어 장기 이식 수술 장면이 자세하게 구현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이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아들이 갑작스레 뇌사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장기 이식의 문제를 듣게 되는 어머니, 그런 부모에게 장기 이식을 제안해야 하는 코디네이터, 뇌사를 판단하는 의사, 수혜자 선정이나 심장을 적출해 4시간 안에 수혜자에게 도착해야 하는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 그리고 심장의 수혜자인 50대 여인, 심장의 제공자인 시몽, 그의 심장을 뛰게 했던 첫사랑 소녀 등 1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시몽의 심장이 50대 심근염을 앓고 있는 여인 클레르에게 이식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단순히 심장 이식 과정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그것에 관여한 인물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각자가 처한 입체적 상황을 재현한다. 이를테면 심장 적출자이자 이송자인 바르질리오는 평소 좋아하는 축구 경기와 애인과의 데이트를 포기하고 심장 이식 과정에 참여한다. 그는 일에 대한 책임감·사명감과 더불어 애인에 대한 미안함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함께 표현한다. 이 모든 인물이 겪는 복잡한 갈등을 한 배우가 연기한다. 시몽부터 시몽의 심장을 수혜 받는 클레르까지 장기 이식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연기하고 소설처럼 상황을 서술하는 지문까지도 소화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된다. 그만큼 공연의 감상이 배우 역량에 좌우되는 작품이다.

음향과 영상, 조명 등 연극적 요소들이 홀로 무대에 선 배우를 도와 극을 이끌어간다. 심장 적출 장면에서 조명은 메스가 지나간 자리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과 그것의 적출 과정을 효과적으로 느끼게 했다. 시몽이 차가운 물을 헤치고 서핑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배경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 파도 영상이 파도를 헤치는 시몽의 기분을 전한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는 관객에게 살아있는 생명력을 감각하게 했다. 철썩철썩 빠지고 들어오는 거칠고 시원한 파도 소리는 심장 박동과 유사한 이미지와 의미를 제공한다. 극의 중요한 순간마다 심장 박동 음향이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마침내 심장이 클레르에게 이식돼 다시 뛰기 시작할 때 심장 박동 음향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영상이 펼쳐지면서 관객은 시몽으로부터 연결된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1인극인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배우는 각 캐릭터는 물론 상황을 서술하는 지문까지 함께 소화해야 한다. 프로젝트그룹일다 제공

시몽이 인적이 묻지 않은 새벽녘 서핑을 즐기고 그의 심장이 다른 이에게 옮겨져 다시 뛰기까지의 과정이 정확히 24시간 안에 펼쳐진다. 그가 서핑을 즐기면서 느끼는 살아있는 감각, 그 심장의 격렬한 박동이 워낙 강렬하다. 그 때문에 시몽을 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어서 '살아있는'을 '살아남은'이라는 수식어로 오인한 듯하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시몽이 서핑을 즐기면서 느꼈던 강렬한 생명력을 시몽뿐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작품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과 환희, 선택과 고민이 들숨과 날숨으로 파도치면서 삶은 유지된다. 아들을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아들의 장기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어머니부터 한 사람의 죽음이 자신에게 희망이 되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여야 하는 클레르까지, 살아있는 자들은 고통의 들숨과 환희의 날숨을 호흡하며 살아간다. 작품의 제목 중 '수선하기'는 체호프의 희곡 '플라토노프'의 "죽은 자들은 묻고 산 자들은 수선해야지"라는 대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시몽의 벅찼던 심장 박동은 삶의 곡예를 서핑하며 클레르에게 닿아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그렇게 삶을 수선하며 환희와 고통의 서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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