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기는 학제개편안과 관련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매년 1개월씩 12년에 걸쳐 입학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1일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 제시했던 '4년에 걸쳐 3개월씩 앞당겨 입학시키는 방안'에 대해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자 대안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선 불과 사흘 만에 학제개편안 내용이 바뀔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교육부의 대응이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제개편안과 관련한 반발이 커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다양한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라"고 지시했고, 여야도 일방통행식 정책발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등 논란이 정치권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박순애 부총리는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정책의 취지는 국가 책임교육제하에서 아이들이 조기에 공교육 체제에 들어와 안정적인 시스템에서 더 나은 교육서비스를 받는 것"이라며 "(입학연령 하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채택할 수 있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총리는 앞서 이날 오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실행 방안이) 아직 확정된 건 없다"며 4년에 걸쳐 3개월씩 입학을 앞당기는 기존 안 대신 1개월씩 앞당겨 12년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기존 안은 2025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2018년 1월∼2019년 3월생, 2026년 입학생은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 입학생은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 입학생은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으로 구분했다. 이럴 경우 최대 15개월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한 학년에 묶이게 돼 학습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우려가 컸다.
이를 12년에 걸쳐 추진하게 되면 2025년에 2018년 1월∼2019년 1월생이 입학하고, 2026년엔 2019년 2월∼2020년 2월생이 입학하는 식으로 2036년엔 2029년 12월∼2030년 12월생이 입학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또한 박 부총리는 "만 5세 초등학교 1학년이 40분간 집중하기 어렵다면 수업시간을 줄이는 등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본격적으로 이런 대안들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학부모, 교사, 교육청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4년, 12년' 운운하면서 교육부가 국교위에 앞서 정책 방향을 내놓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먼저 정해놓고 국교위에서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건 전후가 뒤바뀐 것"이라며 "지금 교육부가 할 일은 정책 안착에 걸리는 기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어떤 지원과 시스템 개편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현 정부는 교사 정원과 예산을 감축하겠다면서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 학제개편안을 불쑥 발표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면서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가 수차례 검토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부작용, 실익이 적다는 이유 때문에 무산됐던 사안을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를 쏟아냈다. 야당은 '정책을 철회하라'며 강공을 펼쳤고, 여권 내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완료 시점에 대한 박 부총리의 발언이 사흘 만에 바뀌는 것은 이 정책이 얼마나 부실하게 추진됐는지를 보여준다"며 "교육계 반대가 분명한데도, 구체적인 내용 없이 정책을 발표해 심각한 사회적 혼란만 초래했다"며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한덕수 총리는 "아이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고 가정과 학교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며 "교사·학부모·전문가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고 모든 정책 결정 및 실행 과정을 교육주체들과 투명하게 소통하라"고 당부했다.
대선 후보 당시 학제개편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학제개편은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부모들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막으면서 교육의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인데, 지금의 논의는 단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1년 낮추느니 마느니 하는 지엽적 문제에 머물러 있다"며 "교육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갔다면 소모적인 논란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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