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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비틀린 손목

입력
2022.07.2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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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2030 부산세계박람회 홍보대사 위촉식.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1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2030 부산세계박람회 홍보대사 위촉식.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1979년 10월 26일 밤 총성이 울렸다. 이는 나라를 뒤흔들 어마어마한 사건들의 시작이었다. 그 후 드라마와 영화로도 많이 다루어진 그날과 관련해 요즘은 그날의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던 한 사람의 존재가 자꾸 떠오른다. 끌어내려야 했던 또 다른 권력자들의 술자리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노래방 애창곡들의 주인공인 그 사람은 공연장도 아닌 그곳에 왜 있어야 했으며, 그날 이후 오랫동안 그는 왜 사람들에게서 숨어야 했을까.

정치권과 대중 스타들은 오랫동안 종종 서로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각종 공공기관의 홍보 대사부터 최고 권력자와의 공식 회담까지 대중 스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어 왔다. 마이클 잭슨은 방한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담화를 나눴고, 방탄소년단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아시안 혐오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미 행정부는 방탄소년단의 영향력과 상징성을 적극 활용했다. 록밴드 U2의 리드보컬이자 노벨평화상 후보이기도 한 보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아일랜드에 필요한 의료지원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중 스타의 영향력과 정치권력의 만남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정치권과 대중 스타의 관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은 정치권과 대중 스타가 맺는 관계에 대해, 혹은 대중 스타가 정치권으로부터 요구받는 관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우리 현대사의 많은 장면에서 권력에 의해 강제로 아티스트가 자신의 존엄을 무시당한 채 ‘의전’으로 이용만 당한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리라.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김원영은 ‘존엄’과 ‘품격’을 구분한다. 존엄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 품격은 통상적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 이면의 폭력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원영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후원행사 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장식처럼 동원하는 장면들을 언급한다. 이처럼 누군가가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를 드높이기 위해 누군가가 이용되거나 때로는 희생되어야 한다. 존엄이 상호적이라면 품격은 일방적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2030 부산엑스포'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그런데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정치인들은 방탄소년단 멤버의 손목을 비틀어서 잡아 올렸다. 이 순간에 아티스트들은 정치인의 ‘인증샷’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 장면에서 읽을 수 있었던 건 ‘존엄’이 아닌 ‘품격’이었다. 아티스트를 의전용으로 동원하며 서로의 존엄이 아닌 정치인 자신의 품격만을 높여 온 역사가 손과 손목에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정치권이 대중문화와 아티스트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은 문화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동시에 자신들 또한 존엄을 버리고 품격만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힘과 영향력은 문화인의 존엄이 만들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문화예술이 이용당하고 검열받으며 품격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되었던 어두운 과거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더 이상은 1979년 10월의 그날 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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