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 간판 안세영(20·삼성생명)은 한계를 모른다.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힘을 가졌다. 특정 선수에게 계속 지다 보면 두렵고, 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기 마련인데 오히려 더 독기를 품는다. 세계 1위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졌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이달 10일 끝난 2022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여자단식 결승에서 ‘천적’ 천위페이(중국)를 7전8기 끝에 꺾고 정상에 올랐다.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라선 안세영에게 의미가 컸던 우승이다. 천위페이는 지난 4년 간 안세영이 한번도 넘지 못한 벽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만나 0-2로 패한 뒤 내리 7번을 졌다. 2020 도쿄올림픽 8강에서도 0-2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안세영은 8번째 맞대결에서 천적 징크스를 깨고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전남 해남 우슬체육관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안세영은 “천위페이를 이기는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면서 “우승 후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실제 대회 마치고 바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서 잠을 못 자기는 했다”고 웃었다. 당시 1세트를 접전 끝에 따낸 안세영은 여세를 몰아 2세트를 38분 만에 따냈다. 그는 “전에는 리드를 하고 있다가 따라 잡혀서 졌던 기억이 너무 많아 이기고 있어도 불안했다”며 “끝날 때까지 점수를 보지 않고 눈앞의 1점, 1점만 생각하면서 뛰었다”고 돌이켜봤다.
아무리 승부욕이 강한 안세영이라도 결승에서 천위페이를 만난다는 사실에 경기 전 부담감도 컸다고 털어놨다. 안세영은 “한 명에게 계속 지니까 ‘내가 정말 못해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주위에서 얘기도 많이 나오니까 스트레스가 컸다”며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상대보다 더 월등하게 하려고 훈련을 더 많이 했다”고 밝혔다.
주니어 시절부터 ‘천재 소녀’로 주목 받았던 안세영이 세계 무대에서 수 차례 좌절을 맛보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달리기다. 안세영은 “경기에서 패하면 하루 종일 경기 내용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뛰려고 한다”며 “힘들면 빨리 잊혀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값진 결과물을 냈을 때는 “다음 대회가 또 있어 그 순간만 기뻐하고 평소보다 잠을 더 잘 뿐”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낸 결과 안세영은 세계랭킹을 3위까지 끌어올렸다. 안세영보다 위에 있는 선수는 1위 야마쿠치 아카네(일본), 2위 타이쯔잉(대만) 2명이다. 천위페이는 안세영에게 밀려 4위로 내려갔다. 야마구치와 상대 전적은 5승7패로 살짝 열세를 보였고, 타이쯔잉과는 2승1패로 우위를 점했다. 안세영은 “앞으로 2계단 남았다”며 “더 올라가고 상위 랭커를 뛰어 넘으려면 기존에 했던 노력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 훈련을 많이 할수록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세영의 소속팀 사령탑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은 안세영이 공격력을 더 키우기를 바랐다. 길 감독은 “천위페이와 승부에서도 (안)세영이가 공격적으로 많이 쳤던 게 주효했다”면서 “수비는 워낙 좋기 때문에 앞으로는 포인트를 낼 수 있는 결정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1위라는 목표 전에 안세영이 꼭 넘고 싶은 상대가 또 있다. 4전 4패를 당한 중국의 허빙자오(9위)다. 최근 4월 코리아 마스터즈 대회에서도 0-2로 완패한 바 있다. 안세영은 “아직 한번도 못 이겨 본 상대가 많아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며 “천적의 존재는 나를 더 독하게 만들고, 훈련을 더 해야 하는 이유”라고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아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잘 못할 때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며 “눈앞의 대회부터 집중해서 치르다 보면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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