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 주문 건 '필드의 우영우' 이승민,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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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주문 건 '필드의 우영우' 이승민,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등극

입력
2022.07.21 16:39
수정
2022.07.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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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프로 골프 선수 이승민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파72)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USGA 제공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고 여섯 번이나 되뇌었어요.”

이승민(25·하나금융그룹)이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이렇게 말하자 우승 기자회견장에는 박수가 쏟아졌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지닌 그가 프로 골프 선수로 활약할 수 있기까지의 험난한 길을 헤쳐온 원동력이 이 한마디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승민이 미국골프협회(USGA)가 올해 창설한 ‘장애인 US오픈’ 대회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승민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펠리스 노르만(스웨덴)을 연장전 끝에 물리치고 우승했다. 노르만도 발달장애인이다.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였던 이승민은 이날 1언더파 71타를 기록, 노르만과 최종합계 3언더파 213타로 동타를 이룬 뒤 2개 홀에서 치러진 연장전에서 버디와 파를 기록, 파-보기를 한 노르만을 2타 차로 제치고 값진 승리를 낚았다. 이승민은 이번 대회 출전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3라운드 내내 언더파 스코어를 적었다.

이번 대회는 USGA가 다양한 장애를 지닌 골퍼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마련했다. 전 세계 11개국에서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96명의 남녀 선수들이 출전해 사흘 동안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이승민은 우승이 확정된 후 캐디와 지인들의 물세례를 받으며 환호성을 지른 뒤 “너무 행복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는 이어 “좋은 선수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 즐거웠다”며 “더운 날씨에 (축하 세례로) 물을 뒤집어쓰니 시원했다”고 유쾌한 소감을 밝혔다.

이승민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파72)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캐디와 지인들의 물세례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USGA 홈페이지 캡처

이승민은 두 살 때 선천적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스물다섯의 나이에도 대여섯 살의 지능을 가진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은 골프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승민은 특수학교에서 아이스하키에 도전했다가 단체 종목 적응에 어려움을 느껴 그만뒀다.

그런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을 구경한 후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외쳤다. 아들이 처음으로 말한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어머니 박지애(56)씨는 본격적인 ‘골프 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골프는 이승민 가족에게 기적을 선물했다. 발달장애 2급이었던 이승민은 골프를 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해 장애등급이 3급으로 조정됐다. 특히 타인과 눈도 마주치지 않던 이승민은 골프선수로 뛰면서 언어 구사와 소통 능력이 몰라보게 향상했다.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이승민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준회원 자격을 땄고 3년 뒤인 2017년에는 발달장애 선수 사상 최초로 KPGA 1부 투어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이때부터 이승민은 초청선수 자격으로 KPGA 코리안투어 19개 대회에 출전해 이 중 두 차례나 비장애 선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컷 통과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달 열린 SK텔레콤 오픈에서는 공동 62위를 기록했다.

이승민의 사연을 알게 된 하나금융그룹은 “KPGA 투어 무대에서 우수한 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겠다”며 2016년부터 7년째 아낌없는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어머니 박씨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다. 특히 프로 대회에 여러 차례 초청해 주신 덕에 큰 무대에서 날씨, 어려운 코스, 상황들을 경험하며 많이 성장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큰 대회에서도 흔들림 없이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박씨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분이 승민이를 보면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3일 귀국하는 이승민은 KPGA 스릭슨투어(2부 투어) 예선에 계속 도전하고 정규투어 대회도 초청이 오면 언제든지 출전하겠다는 각오다.

이승민의 최종 꿈은 마스터스 출전이다. 그는 “마스터스에 나가서 파이널 라운드까지 경기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한편 다리 절단 장애 박우식(64)은 공동 31위, 발달장애 이양우(24)는 57위로 각각 대회를 마쳤다. 18명이 출전한 여자부에서는 의족 체육교사 한정원(52)이 7위에 올랐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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