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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에겐 미래가 있고, 피해자에겐 과거가 있다니요?

입력
2022.07.23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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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강간할 권리'는 어떻게 현대인의 머릿속에 남았나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 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 안에 마련된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의 추모 공간에 메모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 안에 마련된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의 추모 공간에 메모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연합뉴스가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달고 인하대 학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망사건을 보도했다. 첫 기사였다. 이후, 다수 언론사들이 비슷하게 쓴 기사를 보도했다. 언론사 스스로 만든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잘못된 기사들이었다. 이에 피해자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심각한 2차 가해 게시글과 댓글이 보였다. 사실상, 언론사의 초기 보도가 2차 가해를 유도한 것이다. 언론사는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여성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피해자 탓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 예를 들자면 “그러게,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대?”, “옷차림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냐?”, “여자가 먼저 꼬리 쳤겠지”, “여자가 예뻤나 보다” 등등. 이는 기사 헤드라인이나 내용과 상관없다. 기사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글에서만 볼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은 크고 작은 성폭력을 증언할 때마다 주위에서 듣곤 하는 말들이기도 하다. 가해자 측 아닌 본인 지인들에게서도.

이상하다. 모든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다. 가해자가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여성 탓을 하는 것일까? 상대 여성의 상황에 따라 성폭력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여기 '젠더살롱' 지면에서 나는 계속 썼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각종 성차별, 성폭력 사건의 바탕에는 가부장, 즉 남성의 권력 행사를 당연시하는 '전근대인의 망탈리테(mentalités,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가 있다고. 이번에는 남성들이 가진 ‘강간할 권리’에 대해 말하려 한다. ‘강간할 권리라니? 세상에 그런 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라는 거부감이 생길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다들 알고 있다. 당연히 강간해서는 안 되며 성폭력은 권리가 아니고 처벌받는 강력범죄라는 것을.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남성들의 강간할 권리는 실제로 있었으며 늘 보장되었다.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각종 성폭력 사건에 보도된 가해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사람들의 반응에.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형태로 말이다.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에 관한 언론보도들. 빅카인즈 캡처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에 관한 언론보도들. 빅카인즈 캡처


상층→하층 계급으로...'강간할 권리'의 피라미드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가부장은 처자식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과 처자식을 팔 권리를 가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가족 구성원은 가부장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가부장은 아내에게 정조를, 딸에게 처녀성을 강요한다. 자신의 이익과 다른 남성 집단과의 동맹을 위해 집안의 여성들을 물건처럼 정략결혼으로 교환한다. 그러나 가부장들끼리는 평등하지 않다. 농경이 시작되고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계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상층 가부장은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제를 누렸다. 일부다처제 결혼과 축첩이 법으로 금지된 곳에서도 상류계급은 역사 이래 현실적으로는 늘 일부다처제였다. 그러자 상층 계급 외 남성들에게는 여성이 부족해졌다. 이들 낮은 계급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공격성이 상층 계급 남성들에게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매매가 생겨났다. 또 상층 계급 남성들 소유의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 본인이 속한 계급보다 낮은 계급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를 용인해 주게 되었다. 이리하여 남성들은 아래 계급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할 권리를 누리게 된다. 바로 ‘강간할 권리’다.


“그래 그놈이 감히 당신을 겁탈하려고 들다니! 당신이 성당지기들의 짝이 될 줄 알았던가! 어림도 없지. 그래 대관절 그 부엉이 같은 놈이 당신을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거지? 응, 말해 봐!”

“저도 몰라요.” 그녀가 대답했다.

“어디서 감히 그런 무엄한 짓을! 종지기 주제에 마치 자작처럼 처녀를 겁탈하려고 들어! 천민이 그래 귀족의 사냥감을 밀렵을 해! 그건 드문 일이야.”

민음사 '파리의 노트르담 1' 25쪽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은 15세기 중세에서 근대 이행기의 파리와 파리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위 인용은 페뷔스가 콰지모도에게 납치당하는 에스메랄다를 구해주는 대목이다. 페뷔스가 ‘종지기 주제에 마치 자작처럼 처녀를 겁탈하려고 들어! 천민이 그래 귀족의 사냥감을 밀렵을 해!’라고 말하는 부분에 주목하자. 귀족인 페뷔스는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귀족의 사냥감’으로 여긴다. 콰지모도의 죄를 여성에 대한 인권 차원이 아니라 상층 계급의 재산을 강탈한 문제로 보고 있다. 상층 계급 남성들에게는 자신보다 아래 계급에 속한 여성을 강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귀부인에게 정신적인 사랑을 바치던 매너 좋은 중세 유럽의 기사들은 농민 여성들의 강간을 일삼았던 범죄자 집단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 문학작품에도 상층 계급 남성들이 강간할 권리를 행사하는 많은 예가 있다. 설화 '도미의 처', 판소리계 고전 소설 '춘향전' 등등.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속 에스메랄다. 귀족인 페뷔스는 집시 처녀인 에스메랄다를 '귀족의 사냥감'으로 여긴다. 위키피디아 캡처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속 에스메랄다. 귀족인 페뷔스는 집시 처녀인 에스메랄다를 '귀족의 사냥감'으로 여긴다. 위키피디아 캡처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같은 계급 여성들을 빼앗길 처지에 있는 하층 계급의 남성들이 반발하게 된다. 그들에게도 동등하게 강간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층 계급의 남성들이 서로의 아내나 딸, 누이를 강간하면 사회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하층 여성 중에서 최하층의 여성인 창녀를 강간할 권리를 준다.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므로 창녀를 강간하면 무죄 판결을 받게 해 준다. 실제로 법 조항도 있었다. ‘창녀를 강간하면 무죄’라는. 영국에서는 12세기, 프랑스에서는 16세기까지 있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순결만 보호" 실제 판결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직업 창녀가 아니라도 이미 성 경험이 있거나 많은 성적 파트너를 가졌던 여성을 강간하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라도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나기 일쑤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1995년 개정 전까지 성폭력을 규정한 형법 제32장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여성의 정조를 유린하여 여성의 주인인 가부장 남성에게 피해를 준 죄란 뜻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고대적 사고방식이 보인다. 분노 한번 하고 지나가자.

박인수는 70여 명의 여성을 상대로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1955년 7월 22일 1심인 서울지방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인수는 70여 명의 여성을 상대로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1955년 7월 22일 1심인 서울지방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이 법 조항에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평소 정조를 지키지 않던 여성은 성폭력을 해도 피해 받는 남성이 없으니 성폭행해도 죄가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발생했던 박인수 혼인빙자간음 사건 때 이런 판결문이 나온 적이 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밝혀 두는 바이다.” 이 부분이 바로 ‘법은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는 보호하지 않는다’가 되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 남성을 무죄로 만들어 주기 위해 피해 여성의 사생활을 파헤치며 2차 가해를 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피해 여성을 평소 행실이 문란한 여성, 즉 창녀로 만들어 버리면 강간범은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 측 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을 보도한 기사 댓글을 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원인을 묻고, 피해 여성의 아픔과 분노보다 가해 남성의 창창한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인터넷에 떠도는 명언이 있다. ‘가해자에게는 미래가 있고, 피해자에게는 과거가 있다.’ 역사적으로 문제 있는 여성을 강간하면 무죄였고, 남성은 그저 강간할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니, 강간을 유도하여 한 남성의 창창한 미래를 망친 여성 쪽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한 명언이다.

음주 여부·차림새로 '면죄부' 줘선 안 돼

이번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에 대한 잘못된 반응에서도 많이 보이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임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게 한다. 직업(창녀건 성녀건 강간하면 다 유죄다), 음주 여부, 옷차림새 등등에 따라 피해자 여성에게 원인 제공을 따지는 것은 가해자에게 면벌부를 주게 된다. 범죄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강간할 권리’를 보장해 주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보면, 성폭력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던 선량한 남성들도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은 가해자다. 성폭력 범죄의 원인 역시 가해자다. ‘선량한 대부분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간다’고 억울해하기 이전에, ‘문제 있는 여성을 강간할 권리’를 보장해 주어 남성들이 가해자가 되기 쉽게 만드는 사회 문화부터 함께 고쳐 나가길 제안한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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