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준비 위한 관계, 횡령죄 보호 가치 없어"
범죄를 위해 모은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더라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51)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3년 B씨·C씨와 함께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수익금을 나눠갖기로 했다. B씨는 2억2,000만 원을, C씨는 3,000만 원을 A씨에게 투자했다.
세 사람은 병원 후보지를 찾다가 관계가 틀어져 협동조합 설립을 그만뒀다. 그러나 A씨는 투자금을 두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이듬해 2월 2억3,000만 원을 개인적인 채무 상환에 썼다.
검찰은 A씨의 행위가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형량을 6개월로 깎았다. A씨가 B씨를 속여 2억2,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이미 기소돼 다른 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으므로, 이 부분을 면소(사법 판단 없이 형사 소송 종결) 대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나머지 금액인 3,000만 원에 대한 횡령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세 사람 모두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만들고 요양병원을 설립해 수익금을 배분하기로 한 동업 약정은 의료법상 불법이라 무효지만, A씨가 C씨의 투자금을 반환할 의무는 있기 때문에 개인 용도로 돈을 써버린 행위는 횡령이 맞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3,000만 원에 대해서도 횡령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범죄 실행이나 준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투자금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자의 개설·운영이라는 범죄 실현을 위해 교부됐으므로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금원 교부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민사상 반환 청구를 할 수는 있다"면서도 "민사상 반환 청구권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상 보호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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