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이바는 정말 나체로 마을을 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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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바는 정말 나체로 마을을 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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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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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백마 탄 전라의 백작부인 '고다이바' 논란

존 콜리어, '고다이바', 1898년, 캔버스에 유채, 142.2 cm x 183 cm, 허버트 아트 갤러리 앤 뮤지엄, 코번트리, 영국.

역사는 전적으로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믿었던 역사책의 많은 것들이 '팩트'가 아닌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했고 이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배웠다. 사실이 아니다.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바이킹족이 북미까지 항해해 정착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아메리카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 아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고, 중세에도 지식계층 사이에서는 꽤 널리 알려져 있었다.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네로 황제가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한다든지, 아인슈타인이 수학에 약했다든지 하는 것도 모두 유명한 역사의 거짓말이다.

또 하나의 멋진 거짓말이 있다. 전라의 귀족 부인 고다이바(Lady Godiva)가 백마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이야기다. 11세기경, 영국 워릭셔주 코번트리 지방에 살았던 고다이바는 이곳 영주이자 남편인 레오프릭 백작이 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인하해줄 것을 충언했다고 한다. 백작은 농담조로 부인이 완전히 벌거벗고 마을을 지나가면 세금을 내려주겠다고 말했다. 고다이바는 마을 주민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정오부터 약 2시간 동안 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밖을 내다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후, 긴 머리카락만으로 알몸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천천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결국 영주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고, 고다이바는 군중의 환호 속에 집으로 돌아갔다.

위 그림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라파엘 전파 화가인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의 작품(1898년)이다. 화가는 고다이바를 낭만적 히로인으로 이상화하여 묘사했다. 선명한 붉은색 고급 천으로 덮인 흰 말 위, 암적색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된 안장에 앉아 있는 늘씬하고 관능적인 누드가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말의 색깔은 고다이바의 순수함과 미덕을 상징하기 위해 백마로 표현되었다.

관람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에서 알몸임에도 불구하고 굴욕감이 아닌, 고귀하고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폭정에 항거하고, 정숙함이라는 중세적 도덕에 담대하게 도전한 용기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누드 또한 죄와 유혹의 상징이나 음욕의 대상이 아니라 영웅성의 표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다이바는 더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되고 성적인 측면도 띠게 되었다. 고다이바는 대부분 말에 탄 선정적인 여성 누드로 그려졌다. 벌거벗고 마을을 순회하는 에로틱한 성녀라니! 사실, 성적 매력을 풍기는 여성 누드는 미술사의 오랜 관행이었다.

고다이바 부인은 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고다이바와 레오프릭 부부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수도원을 설립하고 후원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고다이바는 설화에서처럼 관대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체로 거리를 돌아다닌 사건에 대한 동시대의 역사적 기록은 없다. 이 매혹적인 스토리는 그녀가 사망한 지 약 200년 후 세인트 알반스 수도원 수도사였던 로저 웬도버의 기록문서 '역사의 꽃들(Flores Historiarum)'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출처 자료가 의심스러워 고다이바 이야기도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민간에 구전된 설화로 추정된다.

백작이 아내에게 전라의 상태로 마을을 돌아다닐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사료에 의하면, 당시 코번트리는 그녀의 소유였고, 레오프릭이 아닌 고다이바가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이것도 신빙성이 없다. 13세기 노르만 정복 이전의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는 여성이 토지를 상속받고 소유하며 관리할 수 있는 재산권이 보장돼 있었다. 또한, 민속설화에서는 레오프릭을 농민들을 착취한 냉혹한 영주로 묘사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그가 존경받는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실제로 옷을 벗은 게 아니라 화려한 드레스와 값비싼 보석 장신구를 벗어버림으로써 신 앞에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빌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세문화에서 부의 축적은 죄악이었고 부의 표식인 사치스러운 옷, 장신구를 벗는 것은 신에게 속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당시엔 참회를 위해 소매 없는 흰옷을 입고 공공 행렬에 참가하는 풍습도 있었다. 세금을 징수해 부를 쌓은 것에 대해 회개한다는 뜻에서 소박한 흰옷을 입은 것이 후에 나체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다이바 이야기는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일부에 존재했던 아주 오래된 이교도 전통에서 유래된 설화일 수도 있다.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에서 벌거벗은 풍요의 여신이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며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의식의 모습을 발견했다. 또 다른 역사학자들은 오월제 퍼레이드에서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입고 티아라 왕관을 쓴 메이퀸이 봄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말을 타거나 걷는 풍습과 연관시킨다. 그렇다면, 중세교회가 이교도 여신을 경건한 기독교 성녀로 기독교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나체, 말, 희생, 신앙심,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의 개념들이 혼합된 것이 아닐까.

흔히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 혹은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는 승자의 미덕을 강조하고 결점은 외면한다. 때로는 전설과 거짓말이 역사로 둔갑하며,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일 경우도 있다. 역사책은 종종 인간의 욕망과 상상, 가치에 의해 재창조된 허구로 채워진다. 극도로 금욕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성문화를 가진 중세시대,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귀족 여성이 누드로 길거리를 순회했을 리 없다. 민중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고다이바 이야기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신화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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