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세상을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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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세상을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입력
2022.07.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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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미셸 오바마가 2016년 7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있게 간다'는 명언이 담긴 연설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트럼프 집권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는 그야말로 '백래시'(backlash·반발)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차별과 혐오의 세월을 넘어 제법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처럼 시대를 거슬러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상이 이전으로 회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 세계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고, 우리 역시 정권이 교체돼도 공수만 교대한 채 같은 이슈로 똑같이 싸우고 있다. 음악이나 패션이 복고풍 유행을 타듯 정치나 인권에 대한 입장도 돌고 돌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되는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에 따르면 결국 사람이 변하지 않기 때문인가. 사회 현상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식견이 부족한 법률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우리가 아직도 복수의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대 형법 이론에서 형벌의 주된 목적은 응보(應報)에 있다. 응보형은 보복하되 과도하지 않게 함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응보 외에도 교화를 통한 범죄의 예방이 형벌의 또 다른 목적으로 취급되지만, 그럼에도 보복에 대한 집착은 강하고 질겨서 지금도 법감정의 대부분이 응보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응보로 세운 정의는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밀어올릴 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는 세상에는 눈먼 자들만 남고, 총에는 총으로 맞서는 사회에는 총기사고로 숨지는 아이와 시민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 응보형의 기원은 역사상 최고(最古)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법전은 수메르 우르 제3왕조의 창설자(재위 B.C. 2124~2107)의 이름을 딴 '우르-남무(Ur-Nammu)' 법전이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정도 앞선다. 우르-남무 법전에는 '고아가 부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미망인이 강한 자의 먹이가 되지 않으며, 1세켈을 가진 이가 1미나(60세켈)를 가진 이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다. 함무라비 법전의 중심 사상이 동해보복(同害報復)인데 반해, 우르-남무 법전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보복이 아니라 보상을 정의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슬픔과 분노, 복수심은 악과 불의의 완력에 맞설 강력한 힘과 의지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감정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단히 다루기 힘들고 파괴적이어서 삶이라는 배의 주연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슬픔과 분노는 세심한 정제가 필요한 보조연료이자 배의 균형을 잡아 주는 밸러스트일 뿐이다. 주연료는 어디까지나 사랑과 관용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것들은 아무리 지나쳐도 그 누구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미셸 오바마가 말했듯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린 품위 있게 간다)"가 이상적인 삶의 자세다. 비록 거기까지는 힘들더라도, 눈에 코, 이에 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주먹에 가슴이 되면 더욱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퇴하고 나아가는 건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다. 볼테르의 말이 옳다. 복수심보다 더 해로운 건 냉소와 체념이다. 가장 큰 자이언트 스텝은 실패 뒤 일어서서 내딛는 첫걸음이다. 힘들고 실망스럽더라도 다시 가자. 희망은 거시적으로, 실천은 미시적으로, 그런 마음으로 가자.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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