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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가치외교전략을 세우자

입력
2022.07.12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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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갈라 만찬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갈라 만찬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나토정상회담에서 가치외교라는 용어가 등장할 때 나는 생뚱맞게도 KBS '불후의 명곡'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날 저녁 TV에서는 미얀마 출신 소녀가수 완이화가 영국의 폴 포츠와 손을 잡고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미얀마 군부정권에 대해 시종일관 인권외교를 펼쳐왔던 영국에서 온 가수가 소수민족 핍박을 피해 한국을 선택한 미얀마 소녀의 손을 잡고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에서 명곡을 뛰어넘어 자유와 존엄의 가치를 느꼈다면 터무니없는 비약일까.

러시아의 귀환과 중국의 부상이 주변국에 위협요인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가치외교는 동맹 공고화를 통한 안보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하고 나서 국가주의의 공격성과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뛰어넘는 규범세력(normative power)을 자임했던 유럽조차 나토 동맹 강화를 위한 재무장에 나섰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유럽이 규범세력을 뽐내며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확산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따라서 세력권 간 쟁투에 기반한 국제정치 질서의 부활 조짐, 북한의 위협 증대와 이를 용인하는 중국의 대북정책 등에 맞서기 위해 한국의 가치외교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로 보인다.

대부분 주변국들이 우리보다 먼저 가치외교에 나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과 유교적 전통 질서를 가치외교의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아베 총리 시절 일본은 '자유와 번영의 호(弧)'를 내세우며 외교무대를 확장했다. 노르웨이의 평화외교, 스웨덴의 규범외교, 핀란드의 중재외교는 이들 나라의 국격을 높인, 가치외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들 북유럽 국가들처럼 독자적인 가치외교를 펼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지위를 누린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가치외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또 당장 이익을 나누는 데도 가치부터 따져보겠다는 마당이니, 가치외교를 지향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러나 가치의 진영화에 수동적으로 가담하는 편승형 가치외교에 그치지 않고 창의적이고 열린 가치외교를 모색하려는 시도 또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외교의 영역을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로 넓히게 되면 가치외교의 내포는 풍부해지고 외연은 확장될 것이다. 소프트파워 개념을 주장한 조셉 나이 교수도 소프트파워의 원천으로 대외정책, 문화와 함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BTS와 블랙핑크, 브로커와 기생충을 통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드높인 것은 민간의 창의력과 자본이었다.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 교육혁신, 빈곤국 지원 등과 같은 가치를 통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공고히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 되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힘의 모범(example of power)이 아닌 모범의 힘(power of example)으로 세계를 이끌겠다"고 선언한 것은 가치외교의 선언으로 들린다. 그러나 2년 후, 스트롱맨 트럼프의 재집권이 시나리오에서 현실이 된다면 미국의 가치외교는 어디로 튈 것인가. 또 한미 양국 간 가치동맹은 어떻게 변모해야 할 것인가. 불길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한국형 가치외교'를 준비해야 한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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