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능은 '연애 중'이다.
TV채널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마다 간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없는 곳이 없다. 연애 소재 예능이 안전한 성공 공식이 됐다는 증거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진화하면서 별의별 형식의 실험이 이뤄지는 곳도 연애 예능이다. 2000년대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2010년대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스타의 가상 연애 예능이었다면 이제는 일반인의 진짜 연애를 다룬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채널A의 '하트시그널'이 SBS의 '짝' 폐지 이후 사라진 일반인 연애 예능의 불씨를 되살렸다.
방구석서 보는 '연애 판타지'
바뀐 건 출연진만이 아니다. 미혼 남녀가 맞선을 보는 '사랑의 스튜디오'와 같은 설정으로는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지정된 가명으로 참여해, 일정 기간 직업 등 서로의 정보를 가린 채 만남을 진행('나는 솔로')하거나 전 남친, 전 여친 등 과거의 연인이 한 장소에 모여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고('환승연애'), 이혼한 남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돌싱글즈')도 한다.
지난 8일 웨이브에서 처음 공개된 '메리퀴어'는 성소수자 세 커플의 사랑을 조명한다. 남남 커플, 여여 커플, 트렌스젠더 커플 6명이 나오는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다. 웨이브는 15일, 또 다른 성소수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남의 연애'도 공개한다.
이런 연예 예능 범람에 대해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썸이나 연애도 부익부 빈익빈이라, 자신은 여러 이유로 연애를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연애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며 "나는 편의점서 한 끼 대충 때우더라도 먹방, 쿡방을 보는 심리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황 평론가는 "예전에는 '남의 연애를 이렇게까지 봐도 되나?' 하는 관음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다면 이제는 방송이 휴대폰, 태블릿 안으로 들어오면서 개인적인 콘텐츠가 됐고, 유튜브 개인 방송이 활성화하면서 남의 사생활을 보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종종 현실 커플이 생기는 것도 시청자가 남의 연애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누가 출연하냐고? "줄 섰다"
남의 사생활을 보는 게 일상이 된 것은 자신의 사생활 공개를 꺼리지 않는 세태와도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연애 예능 출연자 섭외가 어려웠지만 요즘은 공개 모집을 해도 될 만큼 신청자가 몰려든다. 일반인들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사생활을 공개해 유명세를 얻는 시대와 무관치 않다.
다음 달 7일 tvN에서 선보이는 '각자의 본능대로'도 이런 경우다. 친구끼리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포맷이라 친구 4, 5명이 단체로 신청해야 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는 후문이다.
한 장소에 출연진을 모아 놓고 각종 상황을 제시하면서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속마음을 인터뷰하는 게 연애 예능의 일반적인 형식. 한 방송 관계자는 "대본은 절대 없다. 대본이 있으면 티가 날 것"이라며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미션을 주고 거기서 출연진의 솔직한 마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더... '매운맛'으로 변하는 연애 예능
그동안 방송에서 잘 다루지 않던 사람들의 입장과 관계를 조명한다는 게 2020년대 연애 예능의 순기능이다. 이혼 남녀들이 상대에게 자녀 유무를 공개하기 전에 고민하는 모습('돌싱글즈')이나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살기 힘든 현실('메리퀴어')이 카메라에 담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항상 1인 가구 아니면 부부처럼 정형화된 관계에만 집중했다면 이런 연애, 결혼, 이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다양한 유형의 관계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시각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그저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출연진에 조금 특이한 캐릭터나 셀럽을 집어넣는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지만 이제는 그걸로 안 된다"며 "그러니 해외 데이팅 프로그램처럼 서로 손을 묶어 놓는다든가, 서로 무조건 같은 방에서 자게 만드는 식으로 더 자극적이고 위험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