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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사' 완역을 기다리며

입력
2022.07.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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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표지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표지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 예술 도시로 유명한 피렌체를 소개하는 여행서의 외양을 띠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이란 부제까지 붙었으니, 저자나 출판사도 짐짓 여행서인 체한 셈이다.

책 속내로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피렌체의 명소와 음식점, 예술 작품을 기대한 독자라면 ‘이게 뭐지’라며 갸우뚱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서두에서 밝힌 출간 과정이 여느 여행서와 다른 책의 성격을 알려준다.

베스트셀러가 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를 썼던 김 교수는 2020년 봄, 일면식도 없던 하인후라는 분으로부터 흥미로운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어렵게 번역했는데 어느 출판사도 원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출간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원고를 살리고 싶었던 김 교수는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에서 ‘피렌체사’를 소개하자고 제안해 책이 탄생하게 됐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실상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김 교수의 해설을 곁들여 대중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인문학 대중화에 힘써온 김 교수가 출판계 현실을 감안해 꽤 영리한 선택을 한 것이다.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가 말년에 저술한 대작이다. ‘군주론’ ‘로마사 논고’ 등과 더불어 마키아벨리 사상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저서라고 하는데, 단언하지는 못 하겠다. 아직 읽지 못했으니까. 국내에 이 책의 번역본이 없다. 굳이 한 도시의 역사를 한국 독자들이 읽을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13~16세기 단테,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라는 문학, 예술, 정치사의 걸출한 봉우리를 배출한 피렌체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도시가 아니다. 3세기 동안 귀족정, 평민과 상인 중심의 공화정, 메디치 가문의 군주정, 사브나롤라의 신정, 다시 공화정과 군주정 등으로 정치 체제가 격변했던 피렌체 역사에는 자유와 독재, 민주주의와 공공선, 계급 갈등과 외세의 침입 등 지금 시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렌체의 진면목은 르네상스 예술이 아니라 삶의 양식을 규정한, 그들의 정치 철학이란 주장도 유념하자. 실제 한스 바론이 피렌체 공화국에서 '시민적 휴머니즘'이란 개념을 끄집어낸 후 피렌체 역사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논쟁의 핵심 영역 중 하나였다. 서구의 자유주의가 개인주의와 별도로 귀족과 군주에 대항하면서 공공선을 실현하려는 데서 나왔다는 주장은 피렌체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피렌체는 요새로 치면 참여 민주주의의 원조인 셈이다.

물론 서양 학자들이 떠드는 이런 얘기들은 일반 독자들에겐 피상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내에는 피렌체사가 번역된 게 없으니까. 그나마 김 교수의 이번 신간이 갈증을 푸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 내친 김에 피렌체사의 완역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여행서로 포장한 김 교수의 영리한 선택을 좀 더 변용하면 출판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에게 정치 이야기는 거의 일상의 생수 같은 필수품이다. 피렌체의 정치사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풀어 한국 정치에 빗댄다면 어떨까. 아무튼 완역본이 나온다면 꼭 사겠다고 출판인들에게 약속 드린다.



송용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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