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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파산자 도와주는 게 '공정'일까

입력
2022.07.06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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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실패자의 개인회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애나 어려운 가정환경 등
선택할 수 없는 '불운'에 대한 사회적 보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회생법원은 주식·가상화폐 투자로 손실을 본 채무자들이 개인회생을 신청할 경우 갚아야 할 변제금 총액에서 주식·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을 제외하는 실무 준칙을 제정해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원은 이번 조치가 이른바 '빚투'로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본 채무자들의 빚을 줄여주고, 이들의 빠른 사회 복귀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개인회생제도 취지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빚투'를 조장하고 개인의 투자 손실을 사회가 떠안는 '모럴 해저드'를 유발한다는 비판 또한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빚투' 실패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이번 조치가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최선의 방안인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존 롤스(John Rawls)와 함께 '평등주의적 정의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히는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최고의 덕목(Sovereign Virtue)'이라는 책에서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배려하는 것이 '정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하며 정부가 경쟁의 출발선상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가능한 한 '자원(resources)'을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경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한 후 누구는 일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해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고 누구는 일하는 것을 싫어해 돈을 못 벌거나, 안전한 삶을 선호해 적은 돈을 버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러한 불평등은 개인의 선택의 결과 발생한 불평등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재분배 정책을 통해 개입한다면 이는 '열심히 일한 개미에게 돈을 걷어 베짱이한테 나눠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규범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드워킨은 이처럼 개인 선택의 결과 발생한 불평등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하지만 동시에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불운'으로 인해 발생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사회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드워킨은 본인이 선택한 주식 투자로 손해를 본 사람에게 사회가 보상을 제공할 필요는 없지만, 길을 가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맞는다든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실명하게 되는 경우와 같이 선택할 수 없는 불운 때문에 발생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사회가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선천적으로 장애나 불치병을 갖고 태어나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직면하는 불평등 또한 일정 정도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불운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회가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불운 때문에 발생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절한 사회적 보상을 제공해야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때문에 발생한 불평등에 대해서는 당사자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드워킨은 주장한다.

이러한 드워킨의 관점에서 볼 때, 서울회생법원의 이번 조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 발생한 불평등에 대해 사회적 보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조치로 볼 여지가 많다.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회생을 도와주는 것보다 장애나 어려운 가정환경같이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불운 때문에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장애나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시점이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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