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벽 계속 높이면 미국 기업 고통"
나토 정상회의 직후 '미-유럽 균열' 노려
최근 유럽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와 48조 원대의 수입 계약을 체결한 중국이 이번 계약은 사실상 미국을 향한 '무역 보복'이었음을 자인하며, 앞으로도 중국의 '구매 파워'로 미국 경제 흔들기에 나설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4일 '보잉의 실망은 중국 잘못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공동 사설을 통해 "걸핏하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이야기를 꺼내고, 제재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역 제재를 내놓는 나라와 누가 대규모 거래를 할 수 있겠냐"며 "하물며 수명 주기가 길고 전문적 유지·관리가 필요한 항공기와 같은 제품은 말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보잉 대신 유럽의 에어버스를 선택한 이유가 미국 정부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1일 △동방항공 △남방항공 △에어차이나 등 중국의 3대 국유 항공사는 유럽의 에어버스와 총 292대의 항공기(A320네오)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A320네오는 미국 보잉의 737맥스의 경쟁 기종으로, 이번 계약 규모는 370억 달러(약 48조 원)에 달한다. 중국 3대 항공사가 이 같은 대규모의 항공기 도입 계약을 동시에, 그것도 한 제조사와 체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에어버스 경쟁사인 미국 보잉으로선 '정치적 이유'로 최대 고객 중 하나인 중국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보잉은 계약 직후 "지정학적 차이가 미국 항공기의 (중국) 수출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며 중국을 향해 불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보잉의 불만에 다시 '미국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환구시보는 "보잉은 '지정학적 차이'에 대해 불평했지만, 중국은 (이번 문제에) 책임이 없다며 "만약 정치적 문제가 있다면 미국이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간 항공 분야에서 미·중 간 거래가 중단될 경우 22만5,000개의 미국 측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미 상공회의소의 전망을 인용하며 "미국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중국을 향해 높은 장벽을 세우도록 놔둬라, 그러면 보잉을 포함한 미국 기업들이 장·단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잉뿐 아니라 미국 다른 기업에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중국의 구매 파워로 미국 경제에 고통을 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사실 중국은 화웨이 등 자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가 쏟아졌던 2018년 이후 애플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하지만 양국 간 전면적인 무역분쟁으로 커질 것을 우려해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런 흐름에서 보잉을 배제한 이번 항공기 구매 조치는 미국이 압박하고 나설 경우 중국도 무역 보복 조치에 언제든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계약 날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지난달 29~30일) 직후라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대중(對中) 압박 전략에 발을 맞췄다. 회의 직후 중국이 전례 없는 규모의 항공기 수출 건을 유럽에 안겨 준 것은, 미·유럽의 대중국 전략에 '균열'을 노리고 한 행위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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