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부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발달장애 가진 캐릭터들의 변천사
'우리들의 블루스'가 끌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민다. 구시대 영화와 드라마 속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이 주로 의존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요즘의 콘텐츠들은 조금 다르다. 주체적인 성향을 강조하면서 신파를 감춘다. 장애가 감동과 성장 드라마의 도구로 쓰이던 과거 작품들과 비교할 때 드라마들의 인식이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들 곁에는 항상 보호자가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장애인을 소재로 인물의 순수함을 다뤘고 큰 감동을 전달했으나 대중에게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각종 콘텐츠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장애를 다루는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켰고 좋은 영향력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드라마 '굿닥터'가 그 중 하나다. 서번트 신드롬(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갖고 있는 의사 시온(주원)의 이야기를 다룬 '굿닥터'는 휴머니즘과 인물의 성장을 적절하게 분배시켰고 큰 성과를 얻었다. 미국과 일본 중국 터키 이탈리아에서 리메이크를 할 만큼 작품성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 위한 콘텐츠들의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니얼굴'은 발달장애인 은혜씨가 문호리 리버마켓의 인기 셀러로 거듭나며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2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및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우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또 독립·예술영화 예매율 1위 수성 기록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니얼굴'을 연출한 서동일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속 발달장애인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다. 하지만 저는 은혜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은혜의 개성과 스타일, 매력들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급적 엄마가 드러나는 신을 덜어냈고 스스로 뭔가 해내는 모습,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모습을 만들려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은혜는 지난달 종영한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직접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영옥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간 다수의 작품들이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다룰 때 비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은혜는 노희경 작가 등 제작진과의 긴 논의 끝에 출연을 결정했고 극의 몰입감을 고조시켰다.
여기에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존재감도 눈여겨볼 만 하다. 작품 속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고래' 등 특정 단어에 집착하고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등의 습관이 세밀하게 표현됐다. 동일한 방식의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 식사를 같은 메뉴로 유지하는 패턴도 우영우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와 같은 연출의 디테일은 보는 이들에게 자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욱 인물에 이입할 수 있게 돕는다. 박은빈도 자세와 목소리 톤 등을 달리 하면서 우영우를 사실감 있게 그렸다.
집필을 맡은 문지원 작가는 '자폐 스펙트럼'을 두고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드라마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 모두가 자료 조사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제작진과 배우의 고민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작품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회는 수도권 2.0%, 분당 최고 2.7%를 기록, 신생 채널인 ENA 자체 최고를 달성했다. 여기에 글로벌 OTT 넷플릭스 인기 순위 2위에 오르며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이렇듯 자폐 소재로 한 콘텐츠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서번트증후군·자폐 스펙트럼 등 인물의 천재성에만 집중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소외되는 다른 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그늘 속에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인물의 서사가 전달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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