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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0년 세종시, '균형 발전' 목적 잃은 '행복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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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0년 세종시, '균형 발전' 목적 잃은 '행복도시'

입력
2022.07.0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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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출범 10년 명암>
공무원 정주 여건 만족도 지속 상승
불경기 잊을 만큼 지역경제 활성화
인재·기업 수도권 쏠림 현상 여전
국가 균형발전 기여도는 '낙제점'
대통령집무실 입주 구체 계획 미정
"선거 때만 행정수도 완성 외쳐"

세종시 출범 1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 직원들이 점식 식사를 하기 위해 삼삼오오 식당이 있는 상가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상전벽해한 세종시는 도시에 거주하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생활 여건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출범 목표인 국가 균형발전 기여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출범 1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 직원들이 점식 식사를 하기 위해 삼삼오오 식당이 있는 상가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상전벽해한 세종시는 도시에 거주하는 공무원과 시민들의 생활 여건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출범 목표인 국가 균형발전 기여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40분 정부세종청사. 출입문마다 쏟아져 나온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인근 식당가로 방향을 잡고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앞선 이들을 추월하려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지만, 대열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는 비장함은 읽혀졌다. 상가 1층에 자리 잡은 식당 관계자는 “오전 11시 반부터 손님이 몰리는 탓에 조금만 늦어도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며 “어림잡아 낮 12시 반까지는 테이블당 두 차례 손님이 앉게 된다"고 말했다.

이주 공무원과 지역 상권 만족도 높아져

이날 대기 없이 점심 식사를 마쳤다는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은 “그래도 점심 한 끼 해결하기 위해 조치원이나 공주, 대전 유성으로 1시간씩 운전하던 때와 비교하면 근무 여건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다”며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공무원은 요즘 거의 못 봤고, 오히려 은퇴 후에도 세종에 남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종시가 1일로 출범 10년을 맞이하면서 정주 여건이 크게 개선됐지만, 출범 초기만 해도 서울~세종을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갈 걱정, 밥 걱정, 올 걱정을 일컫는 '일일삼우(一日三憂)'는 일상이었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편의시설 부족으로 2부제로 운영되던 구내식당마저 이용이 힘들어 함바식당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완공됐음에도 코로나19로 개방이 지연된 정부세종청사 체육관이 내달 문을 연다. 작업자가 개관을 앞두고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수영장, 헬스장 등을 갖춘 체육관 개관으로 주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삶의 질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일찌감치 완공됐음에도 코로나19로 개방이 지연된 정부세종청사 체육관이 내달 문을 연다. 작업자가 개관을 앞두고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수영장, 헬스장 등을 갖춘 체육관 개관으로 주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삶의 질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상전벽해 수준의 대변화는 국무조정실에서 매년 실시하는 성과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교통, 교육, 의료, 삶의 질 등 세종특별자치시 정주 환경 만족도 조사에서 관련 수치가 매년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이 세종시로 이전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선 100점 만점에 64점이 나왔다. 대전세종연구원 관계자는 “1998년 둔산신도시로 이전한 대전정부청사 공무원의 2008년 만족도는 95%에 달했다”며 “세종시의 경우 허허벌판에 청사가 건설됐던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점수”라고 말했다.

세종청사 주변 상가에 포진한 점주들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손님 대부분이 공무원인 탓에 경기를 거의 타지 않기 때문이다. 대전청사에 근무하는 국장급 공무원은 “대전청사가 자리 잡은 둔산지구 상인들은 경기 침체가 닥친 줄도, 끝난 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세종청사 주변 상가도 공급 과잉에 공실률이 높은 편이지만, 공무원 덕분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웬만해선 문을 닫지 않는다. 현재 공무원 수는 대전청사 7,000여 명, 세종청사 1만5,000여 명 수준이다.

1998년 대전 둔산신도시로 이전한 대전정부청사 내부. 건물 4개동 사이에 위치한 공용 공간이다. 이곳으로 7,000여 명의 공무원이 이주하면서 대전 인구 증가 등 균형발전 성과를 올렸다. 특히 청사 주변 상업지구는 공무원 덕분에 '경기를 타지 않는 상권'으로 불린다.

1998년 대전 둔산신도시로 이전한 대전정부청사 내부. 건물 4개동 사이에 위치한 공용 공간이다. 이곳으로 7,000여 명의 공무원이 이주하면서 대전 인구 증가 등 균형발전 성과를 올렸다. 특히 청사 주변 상업지구는 공무원 덕분에 '경기를 타지 않는 상권'으로 불린다.


기대 이하 행복도시 성적표

세종으로 이전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그들의 소비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된 점은 행정수도 이전의 긍정적 효과다. 그러나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건설이라는 본래 목표를 감안하면 세종시가 지난 10년간 거둔 성과는 목표치에 한참 모자란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균형 발전을 위한 역대 정권의 온갖 노력에도 인재와 기업의 수도권 쏠림이 멈추지 않자 공무원을 강제로 이주시킨 극약 처방이 세종시의 탄생 배경"이라며 “그럼에도 청년들의 수도권 유입과 기업들의 수도권 투자를 막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2012년 7월 1일 출범한 세종시는 민선 8기(세종시는 민선 4기) 시장이 취임하며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 2030년까지 총 22조5,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건설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는 현재 공정률 60% 수준이다.

2012년 7월 1일 출범한 세종시는 민선 8기(세종시는 민선 4기) 시장이 취임하며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 2030년까지 총 22조5,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건설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는 현재 공정률 60% 수준이다.

실제로 세종시가 경북대 하혜수ㆍ전북대 하동현 행정학과(부) 교수에 의뢰해 나온 세종시 10년 성과 평가에 따르면, 세종시가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한 정도는 지역내총생산(GRDP) 기준으로 전체의 0.7%를 담당하는 데 그쳤다. 2030년까지 이어지는 세종시 건설사업에 22조5,000억 원이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지만, 적어도 균형발전 측면에선 세종시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세종시는 ‘특별자치시’라는 지위를 얻었을 뿐, 제주특별자치도와 비교해 행정적·재정적 이점이 거의 없어 도시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는 행정수도 건설사업이 국가적 관점에서 조명되기보다는 충청 지역 이슈로 치부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세종시 관계자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준하는 특례를 부여해줘야 자족 기능을 갖추고 도시 경쟁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에 이용되는 최대 국책사업

행정수도 건설사업에 대한 철학 부재는 행정수도 완성을 국가 발전전략의 중추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 건설 업무를 포함한 균형발전 관련 정부 기관들의 중구난방식 업무 행태다.

우선 2027년 국회 세종의사당 개원에 맞춰 집무실 마련 계획을 밝힌 대통령실이 국회 사무처와 따로 일을 보고 있다. 균형발전 업무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장관급), 국무총리 직속 세종시 지원위원회, 국토교통부와 행복도시건설청(행복청)이 참여하는 행복도시 건설 추진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도 따로 업무를 보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행복도시 건설 추진위 공동위원장이지만, 회의에 참석한 적은 거의 없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행정수도는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설치 필요성을 강조해 ‘여야가 따로 없는 사업’으로 꼽히지만, 정치권에선 충청권 행정수도 완성 문제를 선거용으로만 주로 활용했다. 행정안전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세종시 건설은 중앙부처를 한데 모아 국가 행정기능을 극대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는데, 이전 기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며 “그렇다 보니 선거 때마다 이전 기관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뒤늦게 세종으로 이전한 부처들은 피해를 봤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갑자기 이주가 결정되면서 직원들이 혼란에 빠졌고, 정부 청사가 아닌 민간 빌딩에 입주했다.

윤석열 대통령 “세종을 진짜 수도로”

‘진짜 수도 세종’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걷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3월 3일 세종시 조치원역 유세에서 “세종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취임 후 세종에서 국무회의를 한 번 개최한 것 이외에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없었다.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지 안에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세종 신도심 복판에 여의도 국회 터보다 두 배가량 넒은 부지다. 2027년 하반기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올겨올 상임위 규모와 지원 조직이 확정되지 않았다. 지역 정가에선 2024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전 규모 윤곽이 잡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지 안에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세종 신도심 복판에 여의도 국회 터보다 두 배가량 넒은 부지다. 2027년 하반기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올겨올 상임위 규모와 지원 조직이 확정되지 않았다. 지역 정가에선 2024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전 규모 윤곽이 잡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세종 집무실 설치를 위해 정부세종청사 1동 국무회의장을 활용해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와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12월 입주 예정인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신청사) 내에 집무실을 마련하고, 2027년 하반기 국회 세종의사당 개원에 맞춰 비서동과 관저를 포함한 세종 집무실을 완공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중앙동 내 집무실 마련과 관련해,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도 들은 게 없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중앙동 입주 부처를 먼저 결정해야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의 중앙동 입주와 정부 조직 개편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꿈쩍도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제 위기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고만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 집무실 설치와 관련해 발전된 내용이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종시 고위 관계자는 “큰일은 정권 초반에 추진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데, 차일피일 미뤄지는 분위기”라며 “이번에도 충청도 사람들이 또 속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대전·세종=글·사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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