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홈술' 제격인 위스키를 사랑하는 2030들
주류 구매 어플 통해 한정판·특가 찾고
위스키 소모임에서 술 공부·친구 만들기도
#1. 직장인 황모(34)씨는 퇴근하면서 피자집에 들렀다. 피자가 아닌 술을 사기 위해서다. 아침에 '데일리샷'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예약해 놓은 위스키가 당일 배송으로 도착했다. 집 근처 보틀숍을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모두 품절이라 2주를 기다렸다 구한 소중한 '라프로익 10년산'이다.
#2. 대학생 박모(26)씨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위스키를 기본으로 해서 여러 가지 레시피를 시도해 보는 것을 즐긴다. 잭콕(잭 다니엘스와 콜라를 섞어 먹는 칵테일)에 버번위스키를 넣어 본다든가 스카치 위스키에 오렌지 주스를 넣어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한다. 가끔 바에 들러 바텐더에게 위스키에 대해 묻고 선배들과 맛과 향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추천받은 위스키를 '술킷리스트(술 버킷리스트)'에 저장해 놓고 온라인 위스키 커뮤니티에 관련 행사나 판매 정보를 얻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모든 회식과 큰 술자리가 사라지면서 그동안 '청승맞다'며 놀림 받았던 '혼술'과 '홈술'이 오히려 트렌드가 됐다. 단체 회식을 비롯해 오후 9시가 넘으면 외식도 금지된 상황에서 소주는 부담스럽고 맥주는 질린다며 2030세대는 위스키를 찾았다. 혼자 한두 잔 홀짝 거릴 수 있는 술이라는 것.
거기에 맛과 향이 다양해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무엇인가 만들어 보기를 좋아하는 2030세대의 마음을 건드렸다. 대학생 류수연(25)씨는 "위스키는 향과 맛이 다양해 나에게 무엇이 맞는지 찾아가며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면서 "게다가 브랜드마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마시는 위스키는 싱글몰트로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맛과 향이 다양하다. 위스키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저가로 시작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값비싼 위스키 구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류씨는 "싼 위스키여도 내게 잘 맞으면 좋은 위스키"라면서 "반대로 아무리 비싸도 내 취향에 아니면 돈을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면세점에서나 구할 수 있던 위스키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까지 등장했다는 것도 위스키에 젊은 세대가 진입하는 문턱을 낮췄다. 편의점에서는 기존 제품보다 적은 용량과 낮은 가격으로 위스키를 맛볼 수 있어 홈술에는 안성맞춤이다.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서 자취를 하는 김규민(27)씨는 "집에서 혼자 마시면서 오래, 많이 술을 먹으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넷플릭스 보면서 서너 잔 마시고 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적은 용량으로 판매하는 위스키는 제격이었다. 보통 한 병에 700㎖ 이상 들어가는 위스키를 편의점에서는 200㎖에서 500㎖ 정도의 소용량으로 팔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위스키 인기가 늘어난 것을 실감한다면서 "최근 집 근처에 보틀숍이 여러 곳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가 원룸촌이라 위스키 수요가 없을 것 같은데 최근 1, 2년 사이에 문화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데일리샷' 같은 주류 쇼핑 앱도 활용한다.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인 가격을 비교할 수 있고, 테이스팅 노트가 적혀 있어 향과 맛을 예상할 수 있다. 원하는 술을 고르면 당일 배송으로 집 근처 식당이나 가게에서 받아갈 수 있어 편리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끝났지만 혼자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바에서 술 마시는 문화가 '힙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는 룸살롱이나 회식 때 폭탄주로 먹던 '아재술'의 위스키가 아니다. 20대 여성 직장인 홍다예씨는 "업무가 힘든 날 집에 가기 전 바에 들러 한두 잔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위스키 배우고 함께 즐겨요"
이런 위스키 열풍은 몇몇 마니아의 독특한 취향을 넘어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6년째 와인위스키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최작가(예명‧37)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20대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모임을 여는데 평균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으로 낮아졌다는 것. 최씨의 위스키 소모임에는 한 번에 열댓 명 정도가 모인다. 한 달에 5, 6회 위스키 모임을 여는데 자리가 거의 꽉 찬다고 했다.
최작가는 "새로운 술을 마시고 모르던 사람을 만나는 게 모임의 취지"라면서 "위스키를 공부하고 술을 매개로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 초반에는 운영진이 그날 시음할 위스키의 역사와 종류 등을 알려준다. 최작가는 "위스키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 입문용 싱글몰트 두 종과 블랜디드 두 종을 준비한다"면서 "참석자들은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경험하면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한다"고 설명했다.
2030 직장인 위스키모임은 원데이 클래스 형태로 진행되지만 참석자들은 모인 이후에도 꾸준히 관계를 이어 가기도 한다. 최작가는 "모임에 오면 그날 참석자 단체대화방을 만드는데 5년 전에 만든 단톡이 활성화돼 모임을 함께 신청하기도 한다"면서 "글램핑이나 물놀이를 함께 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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