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장애인을 차별한다... 우크라 약자들의 '이중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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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장애인을 차별한다... 우크라 약자들의 '이중 비극'

입력
2022.07.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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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⑥

우크라이나 중부 폴타바주(州) 크레멘추크의 한 병원에서 러시아의 쇼핑몰 미사일 공격으로 부상당한 한 부부가 치료를 받으며 손을 잡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크레멘추크=로이터·연합뉴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침략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했다. 장애가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생존권을 두 번, 세 번 잃었다.

장애인들은 러시아군의 공격과 약탈을 피해 도망칠 수 없다. 약과 생필품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 전쟁으로 사회안전망이 마비된 상황에서 고통은 가족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 장애가 있는 가족을 끝내 버리는 비극도 벌어진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 전쟁 역시 약자에게 훨씬 더 가혹하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장애가 있는 15세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올레나씨를 현지에서 수소문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뷰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 발이 묶인 그는 러시아군에게 보복당할 걱정에 인터뷰를 하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전쟁 중에 얼마나 힘든지 알리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올레나씨 아들은 유전자변형에 의한 정신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아이는 전쟁 중인지도 모를 정도로 인지 능력이 낮다고 한다. 올레나씨는 "매일 발작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매우 극심한 발작이 오고, 약물을 주입해야 안정된다"고 했다.

올레나씨는 그런 아들을 데리고 도시 밖을 빠져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아들의 몸집이 올레나씨보다 커진 지 오래다. 올레나씨는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피란길에 오를 수는 없다"며 "아이가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아이를 도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했다. 또 "주변 장애인 가정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우크라인에게 필수 의약품 처방도 거부


지난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이르핀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자신의 집 앞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르핀=AP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최소한의 치료도 제한된다는 점이다. 올레나씨 아들은 3가지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 한 종류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구하고 있다. 올레나씨는 "약을 구해다 주는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들이 보낸 약을 운송해주는 트럭기사가 나에겐 영웅"이라고 했다.

두 가지 약은 어떤 경로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가 허용하지 않는 약품이라 우크라이나 반입 자체가 막혔다. '어둠의 경로'도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반입 가능한 약물 중 대체재를 찾았지만, 러시아 손에 넘어간 병원에선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올레나씨는 "약을 처방하는 권한은 러시아에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국민에겐 처방을 해주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쟁여둔 약은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간다. 한 달 정도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이 길을 찾아 줄 거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 한다. 아니면 전쟁이 한 달 안에 끝나기를 바라거나..."

유엔 등 국제기구도 우크라이나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사례를 모아 보고서를 냈다. 내용은 이렇다.

"시청각 장애,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은 무력 공격에 더 취약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이 공습 대피소나 피란 열차에 접근하지 못한 일이 종종 발생했다. 열차에 탑승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부의 지원 없이 탈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휠체어∙목발 등 이동 보조수단도 부족하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의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 생을 마감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있다."

키이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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