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무죄 취지 파기환송
횡령죄로 처벌하던 판례 바꿔…23년만
경북 안동 소재의 한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A씨. 그는 2013년 11월 현금과 전남 강진 소재 토지를 받는 조건으로 식당을 B씨에게 넘기면서, 보증금 2,000만 원을 돌려받을 권리를 함께 넘겼다.
정작 건물주는 이 사실을 몰랐다. A씨와 B씨가 계약 조건을 두고 갈등을 벌이는 사이, A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준 것이다. 그리고 A씨는 밀린 월세와 관리를 빼고 받은 1,146만 원 중 일부를 사용했다. A씨에게 다른 사람의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임차권 넘기고 보증금 '꿀꺽'…대법 "형사처벌 대상 아냐"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금전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임의로 금전을 쓸 경우 처벌되는 형령죄가 적용된 것이다.
1·2심은 A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B씨의 보증금을 보관하는 지위에서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았고, 이를 임의로 사용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199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이 같은 경우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알리지 않고 채권을 돌려받아 그 금전을 임의로 처분하면 채권양수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날 전원합의체는 "A씨가 B씨의 금전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무죄 취지로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가 채권을 B씨에게 넘겼다고 해서 B씨를 위해 재산상 사무를 대신하거나 맡아 처리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채권을 넘긴 사람에게 돈을 주지 않은 건 계약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책임만 지게 하면 되지 횡령죄까진 물어선 안된다는 게 다수 대법관(8명)의 의견이었다. 23년 만에 판례가 변경된 것이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노태악 4명의 대법관은 A씨가 B씨를 위해 보증금을 수령한 것이라며 횡령죄가 성립된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온 최근의 횡령·배임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 흐름을 반영했다"며 "횡령죄 구성요건인 '재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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