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면 나가서 죽으란 것" 치료감호소 실태, 인권위에 진정

이전기사

구독이 추가 되었습니다.

구독이 취소 되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죽으려면 나가서 죽으란 것" 치료감호소 실태, 인권위에 진정

입력
2022.06.23 14:04
수정
2022.06.23 14:35
0 0

[치료감호의 눈물]
폐암 걸려 치료감호소에서 출소
86세 노모와 살며 치료 못 받아
70여일 만에 사망한 조현병 환자
한국일보 보도로 세상에 알려져

대학생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의 가게 일을 밤낮으로 도운 오한수(가명·58)씨는 20대 중반부터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조현병 치료를 받느라, 결국 대학원 공부는 끝마치지 못했다. 한수씨는 약을 끊은 동안 증상이 심해져 행인을 위협했다가 치료감호소에 5년 6개월간 갇혔고, 폐암에 걸리고서야 올해 1월 석방됐다. 이후 치료를 받지 못하고 70여 일 만에 사망했다.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탁상 위에 한수씨와 어머니 김경자(가명·86)씨의 행복했던 시간을 담은 사진이 놓여 있다. 최나실 기자

5년 6개월간 치료감호소에 갇혔다가 폐암 진단 후에야 출소해 70여 일 만에 숨진 조현병 환자 오한수(가명·58)씨 사건(본보 6월 14일 1·10면 보도)과 관련해,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3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서를 접수했다. 연구소는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책임하고 반인권적인 치료감호를 전면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노태호 연구소장은 “국가가 고인을 치료한다며 치료감호를 해놓고 긴 세월 폐암이 발병하고 진행되는 동안 적절한 의료적 조치도 없었으며, 이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사망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치료감호를 종료시키고 방치한 것은 죽으려면 나가서 죽으라는 의도밖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할 진정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임한결 변호사, 노태호 소장, 최정규 변호사. 최나실 기자

치료감호법 제28조는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하기 곤란한 질병에 걸렸을 때에는 외부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다’고 돼 있으나, 오씨는 치료받지 못하고 집으로 보내졌다.

치료감호소(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는 범법 심신장애인(정신질환·발달장애)에 대해 ‘적절한 보호와 치료를 함으로써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고자 설립된 법무부 산하 기관이다.

지난 3월 말 한국일보 기자들은 행인을 위협해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으나, 형기의 11배인 5년 6개월을 치료감호소에서 보낸 오씨를 만났다. 그는 폐암 말기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올해 1월에야 석방됐다. 86세 노모와 단둘이 살던 오씨는 돌봄공백 속에서 적절한 의료 조치를 못 받다가, 4월 14일 끝내 숨졌다.


오한수(가명)씨와 김경자(가명)씨 모자의 사연을 보도한 6월 14일자 한국일보 기사의 일부.

연구소 소속의 임한결 변호사는 “국가가 치료감호를 강제해 놓고서는 폐암 발병 이후 내보내고 방치한 것은 심각한 생명권·건강권 침해이자 장애인 차별 행위”라며 “인권위에 치료감호소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점검을 촉구하는 진정을 제기하고, 잘못된 치료감호 가종료 결정으로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법무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강원 연구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장도 “현 치료감호 실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끝이 어딘지 보여준다”며 “돌봄의 부재, 복지의 실패,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끝까지 내몰린 정신장애인들은 결국 치료감호소에 가게 되고 이렇게 죽음을 맞게 된다는 걸 이 하나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그러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께 호소하고 싶다. 치료감호소에도 국민이 살고 있고, 장애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치료감호 제도를 개선해주시고, 특히 장애를 고려한 처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 12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치료감호소 내 장애인 처우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도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조속한 조사를 촉구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당사자를 죽음으로 내몬 무책임한 치료감호 종료결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피해자의 경우 고령의 어머니 외에 돌보며 치료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졌는데, 치료 필요성을 마치 돌봄의 필요성으로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이라며 “치료감호도 엄연히 자유를 박탈하는 수용인 만큼 ‘치료 필요성’의 의미가 보다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변호사)은 “치료감호 종료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돌봄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돌봄의 무거운 책무를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고, 가족의 돌봄이 멈춰지는 순간 정신·발달장애인은 세상과 격리될 가능성이 높다”며 “스스로 챙기기 어렵고 가족이 돌보기 어려운 사람은 세상과 평생 격리돼 살아야 한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강복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오롯이 한 의사가 감당 못 할 숫자의 환자를 보게 하면서, 어찌 치료가 되고 보호가 되겠냐. 부모에게조차 인계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현실에서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강 부대표는 이어 “전 발달장애인 부모다. (자식이) 지역사회에서 온전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게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삭발과 단식을 해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정신·발달장애인)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탁상공론하며 예산이 부족하다는 국가와 사회가 반성할 일”이라고 외쳤다.

▶기사가 클릭되지 않으면 다음 주소(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0916000005565?did=NA)를 복사해서 넣어 검색하시면 됩니다.

최나실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치료감호의 눈물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