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러 가자"는 부장님…'소통'일까요 '괴롭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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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러 가자"는 부장님…'소통'일까요 '괴롭힘'일까요

입력
2022.06.23 04:30
수정
2022.06.2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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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대 피우자"는 상사에 고민하는 하급자
직장인들 "비흡연자임에도 거절 어려워"
상급자 "대면접촉 제한…대화하자는 취지"
전문가들 "직장 괴롭힘 인정…인권침해 우려도"

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비흡연자임에도 직장 상급자의 요청에 따라 흡연장에 따라가는 직장인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직장인들은 해당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직장인 박영호(32·가명)씨는 오전 9시가 넘으면 긴장감이 몰려온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김 부장님이 '기분 좋은' 제안을 하기 때문. '화장실로 도망칠까'라는 마음속 번뇌를 거듭하던 그때, 올 것이 왔다. 부장님은 여지없이 "누구 담배 한 대 피우러 갈 사람 있나"라고 외쳤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팀원 모두 고개를 반쯤 들었을 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부장님이 "영호씨, 담배 한 대 피우러 가 줄 거지?"라고 물었고 '비흡연자' 영호씨는 오늘도 흡연실로 따라 들어갔다.



하급자의 '고통'…"담배 안 피우는데 왜 끌고 가나"

노동전문가들은 비흡연자인 하급자에게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는 상급자의 제안은 '인권 침해'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6년 차 직장인 오현석(33·가명)씨의 아침도 비슷하다. 올해 초 새로 온 부장님이 "현석씨, 잠깐 얘기하러 담배나 피우러 갈까"라는 한마디가 고통의 시작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부장님을 뺀 모두가 비흡연자이지만 부장님은 매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팀원들에게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를 되풀이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화'와 '소통'의 시간이라 하지만, 팀원들의 불만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현석씨를 포함한 팀원들의 마음은 무거워지고 팀 분위기는 가라앉고 있다.

현석씨는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들을 흡연장에 끌고 가는 것은 괴롭힘 아니냐"면서 "막상 따라가도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듣다 오곤 한다"며 답답해했다. 이어 그는 "소통이라는 핑계로 담배 피우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거나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그 빈도가 늘어나다 보니 이런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속앓이만 하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여의도 금융회사에 다니는 임미연(29·가명)씨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마다 흡연을 하는 상급자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흡연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도 있지만 사방에서 퍼져 오는 담배 연기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한번은 상급자가 눈치가 보였는지 "나는 전자담배라 냄새가 그렇게 심하진 않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미연씨는 웃으며 "그렇죠"라고 답했지만 속마음은 씁쓸했다. 그는 "여의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흡연장이 모여 있는 '담배 길'을 모두 아는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며 "상급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것도 힘들고, 거의 매일 이런 일이 반복돼서 밥을 혼자 먹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상사의 '항변'…"대화하고 싶으니까"

비흡연자와 함께 흡연장을 찾는 일부 상급자들은 '대화'와 '소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하급자들은 흡연장에서도 의미 있는 대화와 소통을 찾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상사들도 할 말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팀원들과 대면 시간이 줄었고 회식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잠깐이나마 '얼굴 보고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관리자급 직장인 이형선(49·가명)씨는 "커피를 마실 때나 식사를 마치고 비흡연자 후배들과 자연스럽게 흡연장에 간 경우가 있다"면서 "직접 흡연을 권유하는 것도 아니고 오며가며 잠시 얼굴이나 보자는 뜻이라 큰 문제를 느끼진 못했다"고 말했다.

현석씨의 부장님도 비슷한 이유를 꺼낸다고 한다. 현석씨는 "부장님이 아침 흡연시간마다 '이렇게라도 얼굴 볼 때 어려운 일이나 건의사항을 말하라'고 한다"며 "지난번엔 이런 게 '소통의 시간이다. 거절하는 사람은 안 부른다'고 말했는데 헛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마다 흡연장에 부르지 말라'고 건의하고 싶었지만 못했다"면서 "부장님이 자칫 스스로 '소통 왕'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고개를 숙였다.


"거절 안 했다고? 그게 직장 갑질 증거"

노동전문가들은 하급자들이 상급자의 부당한 제안에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한 것 자체가 직장 내 괴롭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해당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서 규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고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며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나빠지게 했을 때 등이다. 상급자가 아무리 '소통'과 '대화' 등을 내세운다 할지라도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이 성사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비흡연자에게 간접 흡연을 강요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인권 침해 사례가 될 수 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 노무사는 "비흡연자인 하급자를 흡연장에 데려가는 행위는 직장 내 지위적 우월성이 이용되고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짧은 흡연 시간에 업무 얘기를 제대로 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비흡연자에게 간접 흡연을 하게 하는 것은 피해자의 건강권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직장 내 갑질뿐만 아니라 인권침해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흡연자를 흡연장에 데려가는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또 정부가 구체적 피해 사례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직장에서의 실내 간접흡연 노출률은 15.2%로 조사됐는데, 흡연장에서의 비자발적 간접 흡연 사례 등에 대한 실태 조사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김 노무사는 "앞선 사례들과 유사한 괴롭힘 피해는 꾸준히 생기고 있다"면서 "몇몇 가해자들은 하급자가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아 갑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급자가 상급자의 부당한 행동과 괴롭힘에 거절 또는 항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가 된다"며 "가해자의 위력과 우월한 지위가 두 사람의 관계에 작용해 괴롭힘에 항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노무사는 "대부분 이런 상황은 스스로의 행동이 갑질이 된다는 생각을 못해서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장인들이 자신의 모습이 괴롭힘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실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직장 내 교육을 통한 재교육과 강력한 계도가 중요하다"면서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교육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 상하지 않으면서 '동상이몽' 막아야"

기업문화 전문가들은 상급자와 하급자의 의사 소통을 위해 '완곡한 거절'과 '확실한 의사파악' 등 상호 노력을 제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으로는 '생활인'이자 '직장인'으로서 상사와 극단적 충돌을 피하고 싶어하는 하급자를 위한 '슬기로운 직장생활' 행동 요령도 있다. 이연주 한국CS경영연구소 이사는 "아무리 MZ세대가 할 말은 하는 세대라고 해도 직장 생활의 부당함을 칼같이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직장인들 대부분이 문제는 해결하고 싶으면서도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상사가 나쁜 의도가 아니라 나름의 좋은 의미로 부담스러운 제안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혼란스러워 한다"면서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에게 섬세한 의사 소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가 제시한 방법은 ①'완곡한 거절'과 ②'확실한 의도 파악'. 그는 "만약 상급자가 비흡연자인 하급자에게 흡연장 동행을 요구하는 등 부담스러운 요구를 할 때 '커피를 마실 때 불러달라'거나 '급하게 할 일이 있다'는 등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힐 수 있다"며 "상급자는 반복되는 거절 의사 표현을 제대로 파악해 동료 간 '동상이몽'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이 이사 역시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반복적으로 전했음에도 사용자나 상급자의 부당한 요구와 괴롭힘이 어이진다면 "회사에 피해 상황을 알려 분리 조치를 받고 철저한 사실 관계 파악을 통한 법적 조치 등 단호한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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