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강국 재도약, 호주 현지 취재]
美 NASA, 26일부터 호주서 3회 위성 발사
총리 "흥분되는 일" 과거 영광 회복에 분주
북부는 적도 발사, 남부는 남극 발사 특화
값싸고 성공률 높아 한국도 검토할 최적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이 땅에서 로켓을 3차례 쏘기로 했다. 흥분되는 프로젝트다.”
지난 8일 호주 국토 최북단에 위치한 노던 테리토리(NT). 인구 24만 명 남짓한 작은 주(州)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의 이 한마디에 들썩였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신임 총리가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자마자 NT의 주도 다윈에 들러 나사의 발사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한 것. 나사는 오는 26일과 7월 4일, 16일 총 세 차례 NT 소재 민영회사 ELA의 ‘아넘 우주센터’에서 로켓을 발사한다. 나사가 미국 이외 지역의 상업 시설에서 로켓을 쏘는 건 처음이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마련한 ‘한반도 정세 급변기 한·호주 우주·방위산업 협력현장’ 취재차 8, 9일 방문한 다윈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So exciting(정말 흥분된다)”을 외치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군사전문가 마크 도드(68)씨는 “이번 사건은 호주인들, 특히 NT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67회 폭격으로 초토화됐고, 1974년엔 태풍으로 폐허가 된 아픔을 겪었다.
나사가 ‘다윈’ 낙점한 이유는
나사가 미 본토에서 한참 떨어진 다윈을 낙점한 이유는 뭘까. 클레어 조지 NT주 투자청 투자유치국장은 “적도에 근접해 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라며 "다윈 외에 이런 환경을 갖춘 지역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발사체는 적도 방향으로 발사한다. 자연히 적도 가까이서 쏠수록 성공률이 높고 연료가 적게 들어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야 지구 자전속도(초속 465m)가 가장 빨라 발사체의 가속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아넘우주센터는 적도에서 12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나사가 이번 프로젝트 목표로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태양과 천체 물리학, 행성 과학 현상 조사'를 포함시킨 터라 최적지나 마찬가지다.
ELA의 아넘우주센터는 호주 우주국의 2년에 걸친 평가 끝에 최근 발사 자격을 취득했다. 나사는 첫 번째 고객이다. 조지 국장은 “ELA는 정부 시설이 아니다"라며 "고객이 원하는 발사 시간대를 최대한 맞출 수 있는 장점을 갖춰 앞으로 고객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주 항공우주산업 구심점, 애들레이드
나사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건 그뿐이 아니다. 호주 항공우주산업의 구심점인 남호주(SA) 주정부와 주도 애들레이드도 각광을 받고 있다. NT주가 나사에 발사장을 제공한다면, 발사 관련 기술개발과 통제는 여기서 진행된다. 2018년 설립된 호주우주국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앞서 6, 7일 찾은 애들레이드는 ‘우주산업의 원조’라는 과거 명성을 되찾으려 분주한 모습이었다. 호주는 옛소련, 미국에 이어 1967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위성을 쏜 국가다. 당시 애들레이드대가 위성을 설계하고, 인근 우메라에서 역사적 발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국가 차원의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해 2018년 항공우주국을 세우기 전까지 ‘잃어버린 50년’을 보내야 했다.
리처드 프라이스 남호주 주정부 우주국방국장은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이 쇠락하자 국방·우주산업 육성에 나섰다”며 “그 결과 남호주에는 방산관련 기업이 300개 넘게 생겼고 록히드마틴, 보잉, BAE시스템즈, 레이시온 등 글로벌 10대 방산업체 중 7개가 진출해 있다”고 강조했다.
프라이스 국장이 언급한 300여 개 기업에는 정보기술(IT)·우주 산업단지인 ‘랏포틴(LOT14)’에 입주한 70여 개 스타트업과 유망주로 떠오른 발사장 제공 업체 ‘서던 론치’도 포함돼 있다. 티파니 캐츠마 남호주 투자청 우주분야 담당관은 “서던 론치는 남극에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남극과 태양 동기궤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서 “남호주 아래로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 해상·항공 상황의 간섭을 덜 받기 때문에 발사장소를 찾는 업체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다윈의 ELA가 적도를 타깃으로 한다면 ‘서던 론치’는 남극에 특화돼 두 업체가 호주 우주발사의 양대 중추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참여 검토할 만한 ‘기회의 땅’
이 같은 호주가 한국에도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물론 거대한 로켓과 위성 장비를 호주까지 갖고 가서 발사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21일 누리호를 쏘아 올릴 고흥 나로우주센터 같은 발사지가 한국에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민간의 소형 위성이나 군사용 발사체의 경우는 호주 현지 발사가 유리하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한국은 민간 우주산업이 활발하지 않아 이들 업체가 쏘아 올릴 장소가 마땅치 않다. 실제 국내 초소형 로켓 개발업체인 페리지항공우주는 호주 서던 론치에서 발사를 협의 중이다.
우리 군 당국 고위 관계자는 19일 “한국에서 위성을 쏠 때 1·2단 추진체가 공해가 아닌 일본이나 다른 나라 해역에 떨어질 위험 때문에 약간 사선으로 쏘는데 그러면 연료가 엄청 많이 들어간다”며 “적도 부근에서 쏘면 성공률도 높고 비용도 저렴해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호주는 우리에게 없는 관측과 데이터 수집 능력을 보유해 협력하기 좋은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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