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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식 한국어가 판치는 쿠바 해변의 참모습

입력
2022.06.19 10:00
수정
2022.07.09 18:3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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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정
민원정칠레 가톨릭대 교수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교수가 전해준다.


tvN '남자친구' 포스터(왼쪽), 넷플릭스 '나르코스' 포스터. tvN 넷플릭스 제공

tvN '남자친구' 포스터(왼쪽), 넷플릭스 '나르코스' 포스터. tvN 넷플릭스 제공

암흑가의 제왕 마이클은 마피아의 습격을 피해 쿠바로 도피한다. 쿠바혁명이 터지자 마이클은 카지노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탈출한다. '대부2'(1978) 속 쿠바는 구걸하는 아이들과 총성으로 얼룩진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에서 쿠바는 매혹적인 음악으로 우리를 홀린다. 한국 드라마 '남자 친구'(2018)에서 여주인공 수현은 낯선 여행지 쿠바에서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 진혁을 만난다.

쿠바는 혁명 전까지 미국인들의 최대 휴양지이자 투자처 중 하나였다. 밀턴 허쉬는 쿠바의 사탕수수밭에 초콜릿 마을을 만들어 분배와 상생에 기초한 '온정적 자본주의'를 실험했다. 당시 쿠바 사회는 미국의 설탕 수입 쿼터와 관세에 따라 정치와 경제가 널뛰기를 했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던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원주민, 흑인, 그리고 아시아 노예들의 품을 깔고 일궈졌다. 영국 첩보원 007이 미녀들과 사랑을 나누던 쿠바 해변에서는 이제 유창한 이북식 한국어로 남한 관광객들을 쥐락펴락하는 관광 가이드가 이념의 장벽을 넘나들고 있다.

영화 '맨 온 파이어'(2004)의 전 CIA 전문 암살 요원 존 크리시는 멕시코시티에서 거대 범죄 조직에 맞서 복수극을 펼친다. 영화 속 멕시코는 한 시간에 한 건꼴로 유괴사건이 발생하고 그들 중 70%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끔찍한 곳이다. 드라마 '나르코스'(2015)에서 마약 카르텔의 수장 에스코바르는 자기를 가둘 교도소를 자기 손으로 짓는다. 부하들을 교도관으로 내세워 정부 관료가 교도소에 출입하려면 에스코바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에스코바르의 가족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려던 공산주의 반군은 그의 하수인이 된다. 공산주의 게릴라도 돈 앞에는 이념이고 뭐고, 무릎을 꿇는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허구보다 더할지 모른다. 혁명 후에도 쿠바는 경제적으로 미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멕시코 마약 전쟁의 이면에도 마약 수입국 미국의 이해가 깔려 있다. 1990년대 중반 콜롬비아로 집결된 중남미 마약은 하늘길, 바닷길을 통해 미국 마이애미로 밀수됐다. 미국이 수송로를 차단하자 콜롬비아 최대 마약 카르텔은 붕괴했지만 대신 멕시코 카르텔이 급성장했다.

영화와 드라마 속 중남미는 마약, 폭력, 섹스가 난무하는 무법천지다.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다. 죄짓고 도망가기 좋은 도피처다. 영화 '해피투게더'(2021)에서 두 남자 보영과 양휘는 탱고가 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곳에는 타인의 시선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도 아르헨티나를 떠나면 끝날 인연이다. 화면 속 중남미는 어떤 잘못도 용서되는 곳, 모든 터부가 허용되는 곳이다.

타지인들이 담은 화면에는 울고 웃으며 살아내는 중남미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는다. 중남미가 배출한 여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글로 풀어낸 그들의 고민은 모두 마술적 사실주의인 양 이해되기도 한다. 영화 '코코'(2017)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키는 감독관은 중미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단속하는 미국 경찰관의 복장을 하고 있다. 중미에서 올라가는 카라반 행렬은 미국 국경을 넘을 수 없지만, 중미를 도피처 삼아 내려가는 미국인들은 거칠 것이 없다.

화면 속 중남미는 미국을 좋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솥이 검으니 밥도 검으리라 믿는 모양새는 더 안타깝다. 위험한 곳이라면서 낭만을 꿈꾸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상은 자유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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