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시장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브랜드가 있다면 ‘볼보(Volvo)’가 떠오른다.
실제 볼보는 최근 수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플래그십 라인업인 90 클러스터는 물론 엔트리 모델인 40 클러스터까지 많은 사랑을 누리고 있다. 특히 수 많은 고객들은 폭발하는 인기로 인해 발생한 ‘긴 대기 시간’ 속에서도 볼보의 소유를 원하고 있다.
볼보의 이런 행보는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가 추구해온 ‘안전’에 대한 비전이 소비자들에게 받은 것이 큰 영향을 줬고 나아가 전동화 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자동차 브랜드로 그 입지를 더욱 견고히 다지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볼보는 어떤 역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을까?
부품 회사로 시작된 볼보의 역사
볼보의 시작은 지난 19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1915년의 시작이 ‘브랜드의 이름’이 제시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볼보의 첫 형태, 목적 역시 지금의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자동차 부품 회사’다. 1915년 당시 스웨덴 최대 규모의 볼 베어링 회사인 SKF(Svenska Kullagerfabriken)는 미국 시장에 볼 베어링을 공급을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회사의 SKF의 몇몇 중역들이 신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고, ‘볼보(VOLVO)’라는 사명을 기반으로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는 이윽고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본 궤도에 오르기 전에 중단되어 ‘볼보의 공식적인 데뷔’는 잠시 연기되었다.
참고로 1915년 6월, 공식적인 브랜드 명칭으로 등록된 볼보는 라틴어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이다. 간단히 풀어 정리를 하자면 ‘I Roll’을 라틴어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마찰 없이 회전을 하는 베어링’을 상징했다.
전쟁을 겪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다
SKF는 제1차 세계대전을 위해 많은 군수품을 제작해야 했고, 부품 업체였던 SKF는 기존의 ‘제작 범위’보다 더욱 다양한 부품은 물론 기계 등을 생산해야 했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지만 SKF는 이러한 전쟁을 겪으며 회사의 생산 능력이 대폭 개선되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었다.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1926년, SKF의 중역인 ‘아사르 가브리엘슨(Assar Gabrielsson)’과 SKF의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은 ‘볼보’라는 사명을 사장시키지 말고 새로운 사업, 즉 자동차 제조 산업의 ‘브랜드’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두 인사의 주장으로 인해 SKF의 리더십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새로운 자동차 제조 공장 설립과 함께 두 인사는 자동차 제조 사업을 담당하며 ‘볼보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북유럽의 도로를 목표로 한 볼보의 자동차
새로운 시작을 알리게 된 볼보는 곧바로 ‘브랜드의 첫 번째 차량’을 준비했다. 아사르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르손은 북유럽의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구상했고, 결과는 ‘ÖV 4’으로 이어졌다.
ÖV 4는 차량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우수한 면모를 보였지만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비교적 추운 기후의 북유럽에 ‘오픈 톱 차량’은 소비자들의 기대에 충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소량 생산된 후 루프 패널을 얹은 브랜드 첫 세단, ‘PV4’로 이어진다.
이후 볼보는 1.5톤 타입의 트런 모델인 시리즈 1, 그리고 B1 버스 차량 등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초기 도입’에 큰 힘을 더하게 되었다. 해당 차량들은 북유럽 및 유럽 전역으로 판매되며 새로운 브랜드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이뤄냈다.
체격을 키우는 볼보의 행보
주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볼보는 곧바로 브랜드의 체격을 키우는 모습이다. 증권시장에 상장하며 SKF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독자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M&A를 바탕으로 보다 폭 넓은 행보를 선보였다.
실제 1935년에는 선박 및 대형 기계 등을 위한 엔진 제조 업체, ‘펜타베르켄(Pentaverken)’을 인수했을 뿐 아니라 1942년에는 스벤카 플라이모터(Svenska Flygmotor)를 인수하며 향후 ‘볼보 에어로(Volvo Aero)’의 기반을 닦기도 했다.
또한 1950년에는 건설 장비와 농기계 제작 업체인 ‘볼린데르-뭉텔(Bolinder-Munktell)’을 추가로 인수하며 다채로운 산업 현장을 위한 기계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각 기업들의 기술 흡수를 통해 자동차 제작 능력을 한층 높였다.
게다가 1963년에는 스웨덴이 아닌 캐나다에 ‘헬리팩스 공장(Halifax Assembly)’을 새롭게 설립하며 더욱 큰 자동차 브랜드로 거듭나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은 볼보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볼보는 ‘좋은 자동차 브랜드’로 기록되었다. 실제 많은 좋은 차량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승용 차량 외에도 트럭과 버스 등 다채로운 사업을 꾸준히 선보이게 되었고, 수출 규모 역시 한층 커지며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흐름’은 곧바로 혼란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실제 볼보는 1977년, 스웨덴의 또 다른 자동차 그룹으로 거듭난 ‘사브-스카니아(Saab-Scania)’와 M&A를 추진하려 했으나 협상 결렬의 ‘결말’을 맞이했다.
또한 1980년에는 GM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기술 확보 등 다양한 행보를 선보였다. 그 내용을 떠나 대외적으로 적극적인 브랜드의 행보를 꾸준히 선보이며 ‘미래가 기대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볼보는 다시 ‘르노’와의 협력으로 시장 경쟁력을 한층 끌어 올리고자 했다. 덕분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볼보는 르노와의 다채로운 협력, 상호 주식 보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다만 이러한 협업을 바탕으로 1993년, 다시 한 번 볼보와 르노간 M&A를 추진하려 했으나 이러한 행보도 다시 결로 이어지며 결국 1997년, 르노와 모든 협업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미쓰비시와의 협업 또한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포드 PAG의 품에 안기다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선보인 것과 달리 경영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일까?
볼보 그룹은 1990년대 후반, 볼보 자동차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포드 그룹이 볼보 자동차를 인수하기로 결정했고 포드 그룹은 볼보를 재규어, 랜드로버 그리고 애스턴 마틴 등과 함께 포드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 산하로 배치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포드 PAG는 각 브랜드들의 기술 역량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또 조율하며 ‘브랜드의 경쟁력’을 끌어 올렸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볼보의 안전 기술’ 그리고 ‘구조 설계’ 기술 등이 포드로 흘러갔다는 판단이 많다.
실제 포드는 해당 기술의 ‘수명’을 다한 이후, 최근까지도 해당 기술을 ‘신규 차량’에 적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승용차 부분 외에도 버스, 트럭 부분의 경우도 지분 및 ‘그룹’ 관계 등이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실제 20세기 말부터 볼보 트럭, 버스 그리고 각종 건설 장비, 대형 기계 부분 등은 모두 개별적인 운영, 주식 매각 및 매입, 협업 등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볼보는 사업 부분을 가리지 않고 ‘안전’ 그리고 ‘신뢰’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 개발을 통해 현재의 ‘높은 신뢰도’를 이뤄냈다.
지리의 품에서 피어나는 볼보의 매력
2009년, 중국의 헨리 포드라 불리는 ‘리슈푸’는 자신이 이끄는 지리 자동차, 그리고 투자 은행 중 하나인 로스차일드를 통해 볼보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인수 후에 알려진 바로는 리슈푸는 그 이전부터 ‘볼보 인수’를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를 위해 ‘우수한 협상단’을 구축하는데 많은 힘을 썼다. 리슈푸는 포드와의 장시간의 협의, 조정 끝에 2010년, 볼보는 완전히 지리 자동차 그룹 산하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관계자들은 지리가 볼보의 기술을 이전 받고, 볼보 브랜드를 방치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리슈푸의 결정은 사뭇 달랐다. 볼보에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볼보 브랜드의 독립성을 약속한 것이다.
포드 그룹에 속했지만 ‘경제 위기’ 그리고 주요 브랜드가 아니라는 포지셔닝을 통해 기술 발전 및 차량 개발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볼보에게는 새로운 활력소가 부여되었고, 이후 볼보는 말 그대로 ‘매력 발산’ 그리고 ‘경쟁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한다.
실제 볼보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90 클러스터를 빠르게 다듬고, 60 클러스터와 40 클러스터 등 모든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다듬었다. 이외에도 파워트레인과 새로운 플랫폼 개발, 그리고 보다 능동적인 안전 기술을 바탕으로 ‘사고’ 및 ‘볼보로 인한 사상자가 없는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덧붙여 볼보는 브랜드의 고성능 디비전이었던 ‘폴스타’를 전기차 프리미엄 브랜드로 격상시켜 독자적인 브랜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폴스타1과 폴스타 2를 선보였고, 현재 폴스타 3를 예고하고 있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참고로 이후 지리 자동차 그룹은 볼보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지리 자동차 그룹은 ‘링켄코(Lynk & Co)’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중국 자본이 볼보 브랜드를 몰락시킬 것’이라는 추측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행히 인수 당시 리슈푸의 말처럼 ‘볼보의 독립성’은 지켜졌고, 또 각 브랜드의 포지셔닝 역시 서로 중첩되지 않아 두 브랜드 모두 성장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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