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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냐, 에너지냐"... 우크라 전쟁이 낳은 '곡물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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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냐, 에너지냐"... 우크라 전쟁이 낳은 '곡물 딜레마'

입력
2022.06.14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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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로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
곡물로 만든 바이오연료 대안 부상
"바이오연료 사용하면 식량난 악화"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 '균형' 필요

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솔레다르 마을 인근 밀밭에 러시아군이 발사한 토치카-U 단거리 탄도미사일 잔해가 방치돼 있다. 세계 5대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항구에는 러시아 해군의 흑해 봉쇄로 곡물 2,200만 톤이 묶여 있다. 솔레다르=로이터 연합뉴스

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솔레다르 마을 인근 밀밭에 러시아군이 발사한 토치카-U 단거리 탄도미사일 잔해가 방치돼 있다. 세계 5대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항구에는 러시아 해군의 흑해 봉쇄로 곡물 2,200만 톤이 묶여 있다. 솔레다르=로이터 연합뉴스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 중 무엇이 더 시급한 과제인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국제사회에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쪽에선 "세계 식량난이 악화하면서 옥수수, 대두 등이 원재료로 투입되는 바이오연료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눈앞에 닥친 대기근 위기를 해소하려면 곡물을 에너지가 아닌 식량으로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인 러시아 석유 수출 제재로 에너지 대란이 심화하는 상황은 또 다른 고민을 낳았다. "고유가 시대 대체 에너지인 바이오연료 생산을 마냥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부르는 ‘악순환’의 덫에 국제사회가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일부 글로벌 식품회사들은 “휘발유와 경유에 바이오연료 혼합을 의무화한 정책을 완화해 식량과 식용유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각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바이오연료 사용이 늘어나면 식량 부족 문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이유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지금은 정부가 인위적 인센티브 제공과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 부과를 통해 농작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장려할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구촌은 끼니 걱정에 시름하고 있다. 러시아 해군의 흑해 봉쇄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서 식량 부족과 가격 폭등에 시달리는 탓이다. 유럽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 밀 9%, 옥수수 16%, 해바라기씨유 42%를 공급한다. 현재 저장고에 쌓여 있는 곡물은 우크라이나 1년 수출량의 절반가량인 2,200만 톤에 달한다. 올해 6월 이후 수확될 밀과 옥수수는 2,500만 톤으로, 전 세계 빈곤국 1년 소비량과 맞먹는다. 유엔은 “전쟁이 계속되면 올해 말 식량 불안에 놓인 인구가 3억2,300만 명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식량ㆍ기후ㆍ경제 관련 데이터회사 그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바이오연료에 사용되는 연간 곡물 총량은 19억 인구의 칼로리 소비량에 해당한다. 미국에선 지난해 옥수수 36%, 대두유 40%가 바이오연료 생산에 쓰였다. 벨기에 비영리단체 유럽운송환경연합도 “유럽연합(EU)에서 날마다 빵 1,500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밀 1만 톤이 자동차 연료용 에탄올로 태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7일 몰도바와 접한 우크라이나 팔란카 국경검문소에서 우크라이나산 밀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통과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곡물을 수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데사=EPA 연합뉴스

7일 몰도바와 접한 우크라이나 팔란카 국경검문소에서 우크라이나산 밀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통과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곡물을 수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데사=EPA 연합뉴스

그러나 바이오연료 업계는 억울해하고 있다. “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밀은 제빵용이 아닌 사료용으로, 전체 생산량의 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이오연료 생산 제한이 오히려 재생에너지 손실, 에너지 독립 훼손, 농업 소득 악화,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바이오연료는 에너지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이기도 하다. 미국은 2005년 옥수수, 사탕수수, 감자 등을 발효해 만든 바이오에탄올을 모든 휘발유에 혼합해 판매하도록 의무화한 ‘에너지정책법’을 도입한 이후 ‘E10(바이오에탄올 비율 10%) 연료’를 사용해 왔는데, 최근 유가가 폭등하자 올여름 한시적으로 ‘E15(바이오에탄올 비율 15%) 연료’ 판매를 허용했다. 바이오에탄올 비율이 높아질수록 에너지 가격은 내려간다.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역시 최근 ‘식용유 파동’을 겪는 와중에도 팜유로 만든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 비율을 현행 30% 이하로 낮추라는 국민적 요구를 일축했다. 식용유 가격 안정보다 에너지 가격 안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싱크탱크 세계자원연구소는 미국과 유럽에서 바이오연료에 사용되는 곡물을 50%만 줄여도 우크라이나 밀, 옥수수, 보리 수출 손실분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EU 회원국인 벨기에와 독일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화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리버 제임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은 “식량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세계를 먹여 살리기 위해 제한된 자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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