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주식 추천 뒤 주가 오르자 팔아
차익 36억 불구… 1·2심 "규정 없어" 무죄
대법원, 파기에도 무죄 나오자 다시 파기
"객관적 동기로 추천한 것처럼 매수 유인"
증권방송에 출연해 미리 사들인 주식 매수를 권유하고 가격이 오르자 팔아 치워 돈을 벌었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이미 한 차례 파기환송된 적이 있어 재차 법원 판단을 구하게 됐다.
방송 당일 종목 사들인 뒤 추천 36억 차익
2009년 '한국경제TV'에서 증권방송 전문가로 활동해온 A씨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안랩'을 포함해 자신이 미리 사들인 4개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하고, 주가가 오르자 매도해 이득을 본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른바 '스캘핑' 수법으로, 특정 종목을 추천하기 직전 매수한 뒤 주가가 상승하면 차익을 남긴 것이다. 스캘핑 형태의 범죄가 당국에 적발된 것은 A씨가 처음이었다.
A씨는 특히 2011년 10월 4일 '안랩' 주식을 사들인 날 매수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방송에 나와 "국내 1위 정보보안 서비스업체로 수혜와 실적이 좋다"며 매수를 추천했다. 이후 방송 추천 종목에 안랩 등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신규 편입시킨 뒤 매도해 총 36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유사투자 자문업자'가 주식을 산 뒤 추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 조항이 없어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주식을 보유 중이라고 고지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 조항이 없다는 점도 무죄 이유로 들었다.
"이해관계 밝히지 않은 채 매수종목 추천 위법"
대법원은 그러나 A씨의 '스캘핑'이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며 2017년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투자자문업자나 증권분석가, 언론매체 종사자가 자신이 추천하는 종목을 미리 사들였는데도 이를 밝히지 않았다면 자본시장법상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를 사용해 증권 매수를 추천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주문과 달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매수를 추천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A씨가 방송에서 투자자에게 주식을 매수하라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주식 매수를 부추길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 "방송에서 자신이 사들였다고 밝혔어야"
대법원은 그러나 A씨의 유죄가 인정된다며 재차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A씨가 방송에서 특정 종목을 매수하기 적합하다고 밝힌 점 자체가 '증권의 매수 추천'을 한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시하지 않은 채 객관적 동기에서 추천하는 것처럼 거래를 유인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증권 매수 추천'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고, 법에 저촉되는 추천 행위가 어떤 것인지 기준을 정립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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