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운동 기간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은 것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였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한 시카고 학파의 거두로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한 것도 프리드먼의 영향력이라고 볼 법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할 때까지 (프리드먼의) 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프리드먼은 20세기 후반 경제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목이긴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주류 경제학 중심은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가 아니라 불황 타개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한 케인즈 학파였다. '정부 개입 대 불간섭'이라는 주제를 두고 대립했던 두 학파는 대공황, 스태그플레이션, 금융위기 등 세계적 경제의 여러 위기 국면 때마다 번갈아가며 주도권을 잡았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으로도 이어졌던 이 양대 학파 간 대립에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경제학계 논쟁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는 프리드먼 신봉은 한쪽 눈을 가린, 시장 중심의 자유만 강조해 자칫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의 저서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바로 '정부는 시장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경제학의 이 오랜 쟁점을 놓고 대립했던 프리드먼과 폴 새뮤엘슨의 논쟁을 다룬 책이다. 3년 터울이었던 두 학자 모두 유대인으로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학자는 케인즈 학파와 시카고 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서 1966년부터 18년 동안 칼럼 기고 등으로 격돌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때 도전자 위치였던 프리드먼의 이론이 통하는 듯 보였으나 2000년대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조언을 구한 쪽은 새뮤얼슨을 비롯한 케인즈 학파였다.
책의 미덕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라이벌의 논쟁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누가 옳았는지 답을 주진 않지만, 오늘날에도 중요한 경제 현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배경과 두 학자의 이론적 맥락을 제공한다. 웝숏은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이 정부가 제공하는 안전망에 기대지 않고도 실업과 인종주의, 소득 불평등, 교육 문제 등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이상적 세계관을 선보였다”고 설명한다. 자유 시장의 힘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프리드먼의 주장을 따르자면, 정부는 수많은 권한과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프리드먼은 정부에게 마약을 단속할 권리가 있는지도 의심할 정도였다. 프리드먼을 신봉하면서 코로나 위기를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확장 재정 정책을 펴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다.
프리드먼의 유산에 대한 저자의 냉정한 평가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웝숏은 저서의 말미에서 다음 세대 경제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새뮤얼슨과 달리 프리드먼은 유산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프리드먼의 경제학 이론 중 일부는 존경받지만 그의 ‘교조주의적 통화주의’는 경제사에서 주석 정도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독창적 정치 사상이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결국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책은 국내에도 늘고 있는 프리드먼 신봉자들이 경제 현안의 다양한 측면, 정부 개입과 시장 자유 간의 충돌 문제 등을 폭 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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