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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와 검찰, 두 바퀴로 가는 尹정부

입력
2022.06.10 18:00
수정
2022.06.10 18: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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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기재부 출신에 대거 요직 맡겨
사법·행정 승할 뿐 미래 비전 안 보여
전방위 지혜 구한 키신저 참고할 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혁신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혁신장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미소 냉전기에 미국 외교 사령탑으로 활약하며 냉전 종식의 서막을 연 헨리 키신저.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1971)은 사실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공직에 진출하기 전 학자 시절이던 1967년, 체코 정보부 간부에게 당시 공산주의 블록 양대 강국인 소련과 중국이 반목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중국이 미국에 밀착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두렵다는 속내를 들었던 것이다.

냉전 절정기에 키신저가 공산권 핵심 당국자에게 적진의 내막을 청취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미소 지식인의 비공식 교류 채널 '퍼그워시 회의'에 부지런히 드나든 덕분이었다. 소련은 이 모임을 적대국 엘리트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선전장으로 여겼지만, 만남을 거듭하며 친분이 두터워진 회원들 사이엔 어느새 이념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진솔한 소통이 이뤄졌다. 키신저가 지난 세기 미국 외교의 거두로 활약한 배경엔 이처럼 공직에만 매이지 않고 전방위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 컸다.

대외적으로는 신냉전의 먹구름이, 대내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 파고가 몰려들고 있다. 출범 한 달을 맞은 윤석열 정부를 둘러싼 기상은 그야말로 악천후다. 반세기 전 키신저가 그랬듯이 새 정부는 위기를 타개할 묘책을 찾아 실행할 수 있을까. 1기 행정부를 이끌어갈 고위 관료들의 면면을 놓고 보면 회의감이 든다. 특정 부처 공무원 출신, 특히 검찰과 기획재정부(옛 재무부·재정경제부) 출신이 너무 많다.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대통령 취임사) 상황이라 절감했다면 적이라도 모셔와서 지혜를 구해야 할 판인데, 초장부터 인재 진입 장벽을 쌓은 모양새다.

대통령 친정인 검찰 출신은 대통령실 6명, 중앙부처 장차관 6명이 입성했다. 하나같이 요직이다. 대통령실에선 예산(총무비서관), 인사(인사기획관), 민정(법률·공직기강비서관)에 문고리 권력(부속실장)까지 윤 대통령이 검사 재직 시절 근무연을 맺은 인사들이 차지했다. 행정부에선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까지 틀어쥔 법무부 장관, 국가정보원 조직관리와 예산을 총괄하는 국정원 기조실장을 전직 검사가 맡았다. 정부 부처는 아니지만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장도 검찰 차지다.

'모피아'로 불리는 기재부 출신도 국무총리,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장·차관 8명, 대통령실 비서관 이상급 3명을 배출하며 위용을 뽐냈다. 사적 네트워크도 검찰 출신 관료들에 못지않아서, 총리가 재정경제부 장관일 때 부총리와 경제수석은 재경부 과장,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손발을 맞췄다.

윤석열 정부는 권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사정과 인사 라인은 검찰 출신에, 국정 최대 과제인 성장을 주도할 경제정책은 기재부 출신에 나눠 맡긴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대권주자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옹호 논란을 초래했던 발언, "당시 3저 현상이 있었지만 (관료들에게) 그렇게 맡겼기 때문에 잘 돌아간 거다"는 국정 운영의 소신이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은 '적재적소 인사'라며 성과를 자신하지만, 정부 핵심 기구가 출신과 인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닫힌 네트워크'에 장악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행여 좁은 시야와 정실주의가 정책 실패를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더구나 양 기관의 약진으로 새 정부 진용에선 과거를 단죄하는 '사법'과 현재를 영위하는 '행정'만 두드러질 뿐 미래 비전을 제시할 '정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집권 초기인데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 외엔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일각의 지적은 이런 초록동색 인선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역사서 '광장과 타워'(2017)를 통해 공식 권력과 대별되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조명한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키신저라는 불세출의 외교 책사를 두고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했던 닉슨의 몰락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닉슨은 백악관에만 틀어박힌 채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네트워크 차원에서 보자면 고립된 인물이었기에 그를 궁지에서 구해줄 수 있었을 법한 여러 제도 및 기관들에 친구들을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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