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대불산단 선박 부품업체들
인력난에 계약 물량 반납 잇따라
코로나 외국인 근로자 입국 급감
일당 2배 오르고 일꾼 빼가기 심각
7년 만에 호황 놓칠까 위기감 고조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양성화를"
"일할 사람이 없어서 일감을 돌려주고 있당게. 호황이라는데 문을 닫을 처지여."
지난 16일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에서 만난 선박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늘어놓은 푸념이다. 2015년부터 7년간 침체에 빠졌던 조선업이 최근 호황을 맞고 있지만, 불황 때 보였던 수심이 얼굴에 드러났다. 심각한 인력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처럼 찾아온 재도약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에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현대삼호중공업, 8조 수주하고도 부품 공급 차질 우려
대불산단의 암울한 분위기는 이승환 현대삼호중공업 상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선박용 부품을 주문한 대불산단 중소기업들이 계약했던 물량을 반납하고 있다”면서 “최근까지 반납한 블록만 120여 개, 1만5,000여 톤에 달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64억 달러(한화 8조2,000억 원) 규모로 38척의 배를 수주해 장미빛 미래를 꿈꿨던 현대삼호중공업 입장에선 부품 공급 차질을 걱정하고 있다.
회사에선 자체 생산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불산단이 위치한 전남 서남권 지역의 구조적 인력난이 더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무는 "목포와 해남, 영암, 무안 등 전남 서남권 인구를 다 합해도 50만 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고령층 비율이 높아 내국인 근로자를 지역에서 공급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대불산단, 외국인 노동자 빼 가기 악순환
대형 조선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은 피해가 더 심각하다. 대불산단에서 선박용 대형 블록을 제작하는 ‘유일’은 이미 지난해 6월 8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포기했다. 일이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 50여 명이 인근 경쟁업체로 옮기겠다고 통보했지만, 이들을 잡을 여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지만, 인력난이 심각해 이들을 붙잡기 위한 산단 내부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인력을 빼앗긴 업체가 납품받은 일감을 생산하려면 웃돈을 주고 다른 업체에서 일꾼들을 빼와야 한다.
한 산단 관계자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대불산단의 인력난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선박부품 생산물량이 지난해 29만 톤에서 올해 45만 톤으로 60% 가까이 늘어났지만, 산단 전체 인력은 4,500명에서 5,000명으로 5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남 서남권, 구조적 인력 부족 심화
대불산단의 인력난은 신종 코로나감염증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이후 특히 심각해졌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급감하면서 외국인 비율이 높았던 산단은 치명타를 맞았다. 배후인구 부족으로 전남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과 관련된 중소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외국인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2015년 이후 조선업이 장기 침체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국내 인력 유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 수급마저 원활하지 못하자 업체들은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다. 유인숙 ‘유일’ 대표는 “전남 서남권 조선업체들은 외국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력난 부족은 결국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중소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대불산단 내 노동자 일당은 내국인 18만 원, 외국인 14만 원 수준까지 올랐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산단에 자리잡은 한 업체 대표는 "최근 긴급 도장작업을 위해 일당을 20만 원까지 지급한 적도 있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양성화 등 대책 마련 필요
업체들은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일감을 많이 따놓고도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줄었던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해도, 신입들은 일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불산단 근로자 중 외국인 인력은 60%를 상회하고, 이 중 불법체류자가 절반 이상이라 이들 없이는 산단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단의 한 업체 관계자는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일을 가르치게 되면 제때 작업에 투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관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전남조선해양전문 인력양성센터는 전남도와 대불산단 경영자협의회, 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23일 현대호텔에서 '서남권 조선업 활성화를 위한 인력수급 대책 및 지원방안'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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