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혹행위 당하다 극단적 선택
"중대장, 간부들 불러 '모른다'고 하라"
은폐 정황 의혹 부대 간부 재판 넘겨져
2015년 5월 육군 제11사단 소속 고(故)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 당시 소속 부대 중대장이 고 일병에게 가해진 가혹행위를 은폐했다는 양심선언이 7년 만에 나왔다. 고 일병은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직무 스트레스 등으로 휴가 중이던 그달 27일 경북 영주역 인근에서 운행하던 무궁화 열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은 당시 고 일병이 개인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고 관계자들을 경징계 처분했다.
고 일병과 함께 근무했던 부사관 출신 A씨는 7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 일병이 사망했단 소식이 전해진 뒤 중대장이었던 B대위가 간부들을 긴급 집합시켰다. 그 자리에서 B대위는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앞으로 헌병대 조사가 나올텐데 대대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고 모른다고 말해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전차부대 정비반에서 근무하던 고 일병은 평소 가혹행위를 당해 원형탈모 등의 증세를 보였다. A씨는 "고 일병이 실수하면 심하게 야단을 쳤다던가, 전차 안에 가둔 뒤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정비반 간부가 고 일병에게 '아 이 XX 또 이러네'라고 하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 일병은 유서에 "군 생활한 지 거의 1년이 돼가는데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정비관의 변덕스런 성격도 싫고 다른 정비 간부들에게 피해 주고 그런 것도 싫다"고 썼다.
당시 B대위에게는 근신 5일, 가해자로 지목된 정비관에겐 견책 처분이 내려졌다. 센터는 이들이 경징계를 받는데 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은폐 시도로 고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고 일병 어머니 이순이씨는 "양심선언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아들이 자살했다는 자책감에 B대위가 근신 처분을 무마하기 위해 써달라고 한 탄원서까지 써줬다"며 "밝혀진 진실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A씨 제보로 은폐 정황을 알게 된 유가족은 B대위를 고소했고, 군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직전인 지난달 25일 B대위를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헌병대가 B대위의 은폐 시도 정황을 알고도 무마했단 지적도 나왔다. 헌병대가 고 일병 사망 직후 부대원들에게 '최근 고 일병 사망과 관련해 부대 문제점 등을 발설하지 말라고 교육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교육 받았음'이라는 답변이 나왔는데도 진상을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센터는 "부대 간부들의 사건 은폐와 헌병대의 부실 수사로 유가족은 5년이란 긴 세월을 소송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기회에 군인이 사건 무마, 은폐, 조작, 회유를 시도했을 때 이를 수사 및 조사 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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