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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용퇴한들 뭐가 다를까

입력
2022.05.27 18:00
수정
2022.05.27 18: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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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위원장 용퇴론 주장은 정당
민주당 70년대생 정치인들 더 강성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의 문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70년생 시인 진은영의 ‘70년대産’이란 시를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그것이 비극이다/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우프처럼 돌리면서/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결국 서로 쏘았다"

유신세대나 86세대가 군부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글을 쓰고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70년대생 앞에는 총칼을 든 독재자가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비장감을 위해선 없는 적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10여 년 전에 나온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에 수록된 이 시가 떠오른 것은 최근 86세대 용퇴론이 재차 불거진 게 계기였다.

86용퇴론을 제기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의 주장은 흠잡을 게 없다. 시기와 절차에 다소 문제가 있긴 했더라도 낡은 정치인들에 맞서는 패기는 출중했다. 이를 따지기 어려운지 국민의힘에선 이런 얘기가 나왔다. “586세대가 용퇴하면 김남국 김용민 고민정 세상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70년대생과 80년대생 정치인들이 86세대 정치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나을 게 없다는 비아냥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팬덤정치, 내로남불, 문자폭탄 등 민주당의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민주당의 70년대생 정치인들에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86세대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면서 그 폐해가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 세대의 대결 상대가 폭력적 국가 권력이었다면 이들에겐 검찰과 언론이다. 군부 독재가 사라졌고 그들 스스로 국가 권력을 쥐었는데도 폭력적 권력과 맞선다는 의식은 변함없다. 오히려 권력과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비장함은 86세대 이상이다. 당내 이견을 내부 총질로 규정하며 진압하려는 것도 ‘지금은 전투 중’이라는 비장한 의식 때문일 터다.

진은영 시인의 시에서처럼 이제는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는 선무방송은 더 요란하다. 미학적 견지에선 '목숨을 걸고 싶다’는 어떤 비장감 자체가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즉각적인 대상이 증오의 적이다. 적이 없다면 어떤 빌미를 찾아서라도 키워야 한다. 이들에겐 검찰의 수사권과 언론의 펜이 총보다 더한 무기가 된 것이다.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 시대’에서 가상의 적으로 안성맞춤이다. 가상의 적과 싸우려면 더 과격해지고 더 튀어야 하는 법이다. 마치 과거 군부 정권 시대의 전대협보다 문민정부 시대에 등장한 한총련이 더 과격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니까 86세대가 용퇴한다고 한들, 민주당이 변화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금 식이라면 더 강성의 초선 의원들이 당의 간판이 될지도 모른다.

민주당 70년대생 정치인의 문제를 세대론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70년대생 한동훈 법무장관의 등장만 봐도 70년대생을 일반화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의 문제로 봐야 한다. 독재 권력과 싸웠던 것은 민주화를 위해서였다. 민주화는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 보장이 핵심이지 권력과의 투쟁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민주화' 개념은 여전히 권력과의 전투다. 그러니 전투 중이란 이유로 다른 의견을 봉쇄하면서도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어처구니없는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문제가 70년대생 정치인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돼 있는 셈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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