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대회 2연패' 박항서 감독 현지 인터뷰]
SEA대회 스트레스 매우 컸다… 이젠 홀가분
스즈키컵, '韓감독' 인니ㆍ말레이 다크호스
韓기업-베트남 고위층 가교 역할에도 노력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동남아시안게임(SEA) 최초 2연패,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과 동남아 국가 첫 승리 등 자신이 이룬 업적을 언급할 땐 한없이 겸손했다. 하지만 축구와 향후 목표에 대해 말할 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2017년 10월부터 시작된 박 감독의 베트남 여정은 내년 1월로 끝난다. 베트남의 ‘국민영웅’ 박 감독이 그리는 미래를 23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직접 들어봤다.
-SEA대회 2연패를 이뤄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2019년 필리핀 SEA대회에서 60년 만에 베트남에 금메달을 안겼다. 이어 이번 SEA대회가 마침 베트남에서 열리다 보니 2연패를 향한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컸다.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그간 스트레스가 심했다. 선수들이 잘해줘 경기에 이겼는데, 다 끝나니 그간 쌓인 감정들이 해소되면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만 남았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끈 5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는다면.
"2017년 부임 후 첫 대회였던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당시 (베트남 선수들은 경험하지 못한) 눈까지 내려 꽤 고생했다. 그 외에는 승리한 경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필리핀 SEA대회 직후 열린 U-23 대회 예선 탈락, 지난해 스즈키컵 준결승에서 태국에 0-2로 패한 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이르면 올 12월 대진표가 나올 스즈키컵에서 결승에 진출하는 것, 그게 내 마지막 목표다."
-스즈키컵에서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과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을 상대할 가능성은.
"신태용 감독은 경험도 많고 다방면에 능력을 갖춰 대표팀을 많이 발전시켰다. 김판곤 감독은 홍콩에서 지도자 생활을 오래해 아시아 축구에 대한 식견이 높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까지 한 김 감독은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감독이다. 두 팀 모두 다크호스가 될 것이다. 이번 스즈키컵에서 태국과 베트남이 1번 시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2번 시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세 팀이 모두 한 조가 되긴 어려워도 두 감독 중 한 명과는 예선에서 만날 것으로 본다."
-베트남에서 큰 성과를 거둔 비결은.
"베트남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먹은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베트남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선수들이 모여 있을 땐 절대로 개인 평가를 하지 않았다. 베트남인들은 아침에 꼭 쌀국수를 먹는데, 선수들의 운동량을 고려해 쌀국수를 기본으로 하고 부족한 영양소를 섭취할 음식을 추가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는 풍습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이를 인정하고 충분한 휴식 후 오후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어른을 공경하는 건 베트남도 한국과 같다. 그래서 가급적 선수 가족들의 경조사도 세심히 챙긴다."
-베트남에선 한국의 민간대사로 불린다. 그간 양국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한 걸로 안다.
"5년 동안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나와 많은 베트남 고위 정·관계 인사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선 항상 한국인의 위상에 흠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지방 성(省)장과 중앙정부 관계자들에겐 '한국 기업과 교민들을 더 많이 도와 달라'고 말하곤 했다. 워낙 한국 기업이 현지에 기반을 잘 닦은 데다, 대사관과 한인회 등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별것 아닌 나는 그런 흐름이 잘 이어지게 조금 도운 것에 불과하다."
-'감독직 계약을 재연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다. 향후 계획은.
"(2023년) 1월 30일이 계약 종료인데, 아직은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 향후 실무자들이 여러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베트남 유소년 축구를 육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 이름으로) 별도의 상업적 축구교실 운영은 의미 없다. 유소년의 경우 축구 기술에 앞서 인성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내 철학이다. 베트남 프로축구 클럽이나 기업이 내 철학과 뜻을 같이한다면, 여기서 유소년 축구를 육성하며 양국 친선을 위해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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