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밀가루·식용유 주요 식재료비 급등
고기 줄이고 튀김·과일 빼고...학교마다 점심 비상
"별별 파동 다 겪어도 모든 식재료 가격 폭등 처음"
서울영양교사회, 교육청에 급식비 추가 지원 요청
전교생 400여 명 규모의 경기 A고교는 6월 첫 주에 학교운영위원회 급식소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 들어 '급식이 부실하다'는 학부모 민원이 이례적으로 급증해 학부모, 교사, 영양사와 조리 종사자가 모여 의견을 나눠보기로 한 건데, 민원에서 쏟아진 '부실'의 이유를 요약하면 "식판에서 단백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기 반찬이 눈에 띄게 줄고 떡볶이, 수제비 같은 분식 메뉴와 나물 반찬이 늘었다. 간간이 후식으로 나왔던 과일, 요구르트도 과즙 음료로 대체됐다. 자연스럽게 '새로 부임한 영양교사가 요즘 아이들 입맛을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영양교사도 할 말이 많다. 천정부지로 뛴 물가 때문에 지난해처럼 "주 5회 고기반찬"을 만들어내기는 무리라는 말이다. 제육볶음, 닭갈비 같은 고기 반찬을 만들어도 채소 비중을 절반가량으로 늘려 1인당 고기 양을 줄이고, 저렴한 고기 부위를 섞어야 급식 단가를 맞출 수 있다. A고 교장은 "교사 생활 30여 년만에 급식 때문에 학교운영위원회를 개최해본 건 처음"이라며 "영양교사가 바뀐 탓이라고만 여겼는데, 물가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각자 의견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고공 행진'이 학교 식단을 바꾸고 있다. 돼지고기와 식용유, 달걀 등 주요 식재료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며 예산이 한정된 초·중·고교 급식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오른 물가에 각 학교는 ①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식재료로 급식 메뉴를 바꾸거나 ②후식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③일부 학교는 논지엠오(Non-GMO, 비유전자조작식품) 식자재 구입을 포기하기도 했다.
급식 식재료비 0.78% 오르는 동안 돼지고깃값 30% 폭등
A고교 같은 사례는 전국 여러 학교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대구 B고교 영양교사는 "지난해부터 전교생 무상급식으로 지원금이 늘었는데도 장보기가 만만찮다"며 "우수식재료비 같은 추가 지원금이 없다면 제대로 식단을 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2022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5로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이다. 특히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7% 올랐고, 이 중 식품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특히 돼지고기 등 필수 식재료가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4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전월 대비 28.2% 급등했다. 멸치(22%), 식용정제유(11.8%), 달걀(6.8%), 물오징어(5.5%) 등도 크게 상승했다. B영양교사는 "제육볶음에 돼지 앞다리, 뒷다리 살을 섞거나 대패삼겹살구이에 목살과 김치를 섞어 양을 늘리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이 속도로 밥상 물가가 오르면 2학기 급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올 초 대부분의 교육청은 급식비 단가를 지난해보다 올렸다. 서울시와 대전시 교육청은 초중고등학교 급식비 단가를 6~7%, 세종시와 대구시, 제주도 교육청은 각 5%, 경남교육청은 2.5%를 인상했다. 하지만 학교 영양교사들이 피부로 느끼기에 상승폭은 그만큼 높지 않다. 서울 C중학교 영양교사는 "급식비 중 인건비 인상폭이 커서 식재료비 인상은 2.79% 수준"이라며 "그나마 논지엠오 식품 지원비를 신설해 지원하는 거라 이 부분을 빼면 실제 식재료비 인상폭은 0.78%, 학생 1인당 69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기 D초등학교 영양교사도 "식재료비만 떼어 보면 1인당 170원 오른 꼴"이라고 말했다.
반면 학교 관계자들이 말하는 최근 식재료 인상폭은 시장에서 보는 것보다 크다. 대부분 교육청‧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유통센터를 통해 학교에 공급하는 농축산물 가격을 한 달 단위로 결정하는데, 이 때문에 3, 4월 물가 인상에 따른 적자 분을 5, 6월 식재료비에 반영해 더 올렸기 때문이다.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돼지 앞다리 살 1kg의 가격은 5월 1만870원에서 6월 1만4,540원으로, 같은 기간 돼지갈비는 1만1,040원에서 1만4,780원으로 각각 30.9%, 33.8% 올랐다. 김대영 센터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라 사료 값이 큰 폭으로 오른데다, 거리두기 해제로 외식이 늘면서 돼지고깃값이 폭등했다"면서 "국제 물류이동이 어려워 수입 식재룟값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서울센터가 책정한 6월 수입과일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포도 13%, 오렌지 39%, 바나나 8%가 올랐다.
돈가스 오븐에 굽고 해바라기유 콩기름으로 대체
학교급식 종사자들은 농축산물보다 가공식품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른다고 입을 모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가룻값이 폭등하고, 인도네시아 식용유 수출이 잠시 중단되면서 냉동식품, 조미료 가격이 전년 대비 15~20% 올랐다. C영양교사는 "김치 파동,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구제역 파동, 지난해 대파 파동까지 별별 파동을 다 겪어봤지만, 이렇게 모든 종류의 식재룟값이 일시에 전부 오르는 건 영양교사 14년 만에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급식 종사자들 사이에서 조리 단가를 줄이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D영양교사는 "이달부터 학교마다 튀김류가 메뉴에 등장하는 횟수가 대폭 줄었다"며 "이제 돈까스도 튀기지 않고 기름 뿌려 오븐에 굽는다"고 말했다. 튀겨 나온 냉동식품을 오븐에 데우는 조리법도 예전보다 늘었다. D교사는 "생물을 튀기는 것 보다 냉동 튀김을 데우는 게 가격이 싸서 옆 학교는 이렇게 준비한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가공식품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이런 방식도 계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논지엠오 식재료를 포기한 학교도 있다. C영양교사는 "교육청이 논지엠오 식용유로 해바라기유를 우선 사용하라고 권장하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최근에 포기하고 콩기름을 쓰고 있다"면서 "학기 초만 해도 해바라기유가 kg당 2,000원이었는데, 이제 그보다 훨씬 저렴했던 콩기름이 kg당 4,000원인 실정"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변형이 가능한 대표적인 식재료인 콩은 기름으로 가공할 경우 변형 여부를 알 수 없다.
서울영양교사회는 이달 초 식품비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서울시교육청에 발송했다. 경기 등 다른 지역 영양교사들도 인상 요청을 할지 논의 중이지만,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어려워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꿈나무카드로 먹을 수 있는 밥은 김밥·자장면뿐
물가 상승은 저소득 청소년들에게 더 타격이 크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만 18세 미만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급식을 제공하거나, 일반 식당‧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꿈나무카드를 지원하는데 물가가 오르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급식 단가는 서울시 기준 한 끼에 7,000원. 한데 물가가 너무 올라 이 비용으로 식당에서 제대로 된 밥을 사먹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의 4월 서울지역 외식 평균가는 △냉면 1만192원 △비빔밥 9,538원 △김치찌개 백반 7,154원 △삼겹살 200g 1만7,261원 △삼계탕 1만4,500원 △칼국수 8,269원에 달했다. '참가격'이 조사하는 외식 품목 중 꿈나무카드로 사먹을 수 있는 외식 품목은 자장면(6,146원), 김밥(2,908원)뿐이다.
지역아동센터도 7,000원으로 급식·도시락을 준비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학교 급식이 대량 구매로 식재료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것과 달리 지역아동센터는 최대 청소년 49명만 관리해 식재료 대량 구매가 쉽지 않은 데다 인건비‧가스비 등을 제외한 순수 식재료비는 지원금의 80%, 1인당 5,600원에 불과하다. 주 5회 청소년 35명 급식을 만드는 경기지역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코로나19 이전부터 몇 년째 지원금이 7,000원으로 동결된 상태인데 최근 냉동 해물이 2배 이상 오르는 등 대부분 고기‧해산물 식재료가 다 올랐다"며 "적자가 나면 센터장 사비를 들여 메우는데, 올해 들어 적자폭이 커져 최근에는 매월 20만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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