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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자배달원 목에 폭탄을 달았나

입력
2022.06.10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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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3년 8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시의 PNC은행에 'GUESS'라고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목에 폭탄을 두르고, 지팡이 총을 짚은 브라이언 웰스가 은행 창구에 서서 현금을 요구하고 있다. 피자배달원폭발사건 홈페이지

2003년 8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시의 PNC은행에 'GUESS'라고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목에 폭탄을 두르고, 지팡이 총을 짚은 브라이언 웰스가 은행 창구에 서서 현금을 요구하고 있다. 피자배달원폭발사건 홈페이지

2003년 8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작은 마을 이리시. 다운타운에 위치한 PNC은행에 한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침착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그는 은행 직원에게 작은 글씨로 빼곡한 종이 9장을 건네며 25만 달러(약 3억2,000만 원)를 내놓으라고 조용히 요구했다. 특별한 위협은 없었지만 은행 직원은 서랍에 있던 현금 8,700여 달러를 내줘야 했다. 남자가 건넨 종이에는 자신의 목에 폭탄이 장착돼 있으며, 지팡이는 장전된 총이라 적혀 있었고 '25만 달러를 주면 모두가 안전하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대충 가방에 찔러 넣고 은행을 나온 그는 차를 타고 도주했다. 하지만 5분도 채 안 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막혔다. 남성은 경찰에게 “1시간 전 피자 배달을 갔는데 흑인들이 나를 덮치고 내 목에 폭탄을 달고 은행을 털라 강요했다"며 “빨리 폭탄을 제거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폭탄은 신경질적인 신호음을 내다 폭발했다. 경찰에 포위된 채 도로에 앉아 벌벌 떨던 남성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는 동네 피자가게에서 일하던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당시 46세)였다. 이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괴이한 은행 강도 사건이 됐다.

2003년 8월 28일 목에 폭탄을 두르고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브라이언 웰스가 경찰 차 앞에 앉아 있다. 피자배달원폭발사건 홈페이지

2003년 8월 28일 목에 폭탄을 두르고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브라이언 웰스가 경찰 차 앞에 앉아 있다. 피자배달원폭발사건 홈페이지


그는 인질일까, 공범일까

사건은 의문투성이였다. 웰스는 은행 강도이자 동시에 희생자였다. 당시 수사관들은 “통상 은행 강도는 총을 들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며 돈을 요구한다”며 “자신의 몸에 진짜 폭탄을 두르고 위협하는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웰스의 주장대로 누군가 그를 인질로 삼아 범행을 지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가 은행 직원에게 건넨 문서가 이를 뒷받침했다. 문서에는 은행 직원과 웰스, 심지어 경찰에 대한 경고와 협박, 지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웰스에게 ‘지체하거나 불복하거나 신고하면 너를 포함해 모두 죽는다’고 했고, 경찰엔 ‘너희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이후 웰스가 범행에 사용한 차에서는 범행 후 웰스의 이동 경로와 폭탄 제거 방법 등이 자세하게 적힌 한 뭉치의 설명서가 발견됐다.

웰스의 범행 동기도 부족했다. 피자배달원인 그는 부양가족이 없었고, 혼자 살았다. 전과도 없었다. 채무나 원한 관계에 있는 이들도 없었다. 이웃과 동료들은 그를 착하고, 조용하고, 평범하다고 기억했다. 단출한 그의 집에서도 범죄와 관련된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발견한 것 중 눈에 띄는 것은 지역 매춘부 연락처가 적힌 주소록 정도였다.

정황상 분명 배후가 있는 사건이었다. FBI는 그가 범행 직전 피자를 배달한 장소부터 탐색했다. 인적이 드문 야산에 송전탑만 휑하니 있었다. 인근 흑인 대상 조사도 진행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사흘 후 같은 피자가게 점원이었던 로버트 피네티가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했다. 그는 다음날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부검 결과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수사당국은 당시 두 사람의 사망 사이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2003년 8월 28일 발생한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의 주요 공범인 마저리 딜 암스트롱(왼쪽)과 빌 로스틴.

2003년 8월 28일 발생한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의 주요 공범인 마저리 딜 암스트롱(왼쪽)과 빌 로스틴.


‘사악한 천재’ 암스트롱과 로스틴

사건 발생 한 달 가까이 지난 9월 21일, 이리 경찰엔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접수됐다. 빌 로스틴(당시 59세)이라고 밝힌 신고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여성이 남자친구를 살해하고 자신에게 시신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출동한 경찰은 로스틴의 차고 냉동실에서 꽁꽁 언 남성 시신 한 구를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로스틴은 “마저리 딜 암스트롱(당시 54세)이 남자친구인 짐 로든을 살해했으며, 나에게 시신을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암스트롱과의 오랜 우정을 생각해 부탁을 들어줬지만 고민 끝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로스틴과 암스트롱은 20대 때 우연히 만나 알고 지내왔고, 한때 연인이었다.

부검 결과 로든의 사망 시점은 폭발 사건 바로 전날쯤으로 추정됐다. 게다가 로스틴의 집은 웰스가 마지막으로 피자를 배달한 야산 송전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수사당국은 3명의 잇따른 죽음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직감했다.

경찰은 로스틴의 증언을 토대로 암스트롱을 로든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이리 출신인 암스트롱은 지역 유지의 딸이자 어렸을 때부터 미모가 출중하고 두뇌가 명석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20대에 정신질환을 앓은 뒤 삶이 뒤틀렸다. 35세 때 남자친구를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정당방위를 주장해 풀려났다. 이후 결혼했지만 남편이 뇌출혈로 집에서 쓰러져 사망하자 과실을 이유로 병원을 고발, 합의금 17만5,000달러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

로스틴의 신고로 로든 살인 혐의를 받게 된 암스트롱은 종신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다. 로스틴은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시신 모욕죄’로 벌금형만 선고받았다. 복수심에 불탄 암스트롱은 뜻밖의 주장을 펼쳤다. “로스틴이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 주범”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사건 발생 반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암스트롱은 "가족과 유산을 놓고 갈등을 빚던 로스틴이 25만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터는 범행을 모의ㆍ사주했다"며 "나는 우연히 이 사실을 듣게 됐다”고 진술했다.

FBI는 로스틴의 집이 웰스가 마지막으로 피자배달한 곳과 가까웠고, 로스틴의 집에서 폭발 장치 부품 등이 발견된 것 등을 근거로 그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로스틴의 지인들은 그가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재능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로스틴의 룸메이트 플로이드 스톡턴이 폭발 사건 직후 자취를 감춘 것도 수상했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부족했다. 로스틴은 범행 일체를 부인했고,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통과했다.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유력 용의자 로스틴은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2004년 7월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수사당국은 그가 암에 걸린 사실을 몰랐다고 훗날 밝혔다.

2003년 8월 28일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에 연루된 케네스 반스(왼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 마저리 딜 암스트롱, 빌 로스턴, 플로이드 스톡턴, 로버트 피네티, 브라이언 웰스, 제시카 훕식. 넷플릭스

2003년 8월 28일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에 연루된 케네스 반스(왼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 마저리 딜 암스트롱, 빌 로스턴, 플로이드 스톡턴, 로버트 피네티, 브라이언 웰스, 제시카 훕식. 넷플릭스


공범만 4명? 끝내 베일에 싸인 주범

주변 인물을 탐색하던 FBI는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폭발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 제시카 훕식을 찾아냈다. 그는 웰스의 집에서 나온 지역 매춘부 연락처에서 유독 웰스와 자주 연락한 인물이었고, 경찰이 찾아내자 뒤늦게 진술했다. 훕식은 케네스 반스(당시 49세)라는 마약 판매상으로부터 마약을 구입해왔다. 폭발 사건 발생 한 달 전쯤 반스는 훕식에게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훕식은 반스에게 평소 알고 지낸 웰스를 소개했다. 훕식은 반스의 집에서 암스트롱과 로스틴을 본 적이 있다면서도 범행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다.

훕식의 진술로 수사는 빠르게 진척됐다. 암스트롱의 오랜 낚시 친구이자 마약상이던 반스는 중형을 피하기 위해 수사당국에 적극 협조했다. 반스는 암스트롱을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암스트롱은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돈과 귀중품을 PNC은행에 맡겼는데 은행이 그의 동의 없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를 넘겨줬다. 아버지와 유산 문제로 갈등을 겪던 암스트롱은 은행과 아버지에게 보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암스트롱은 나를 찾아와 아버지를 살해해 달라고 부탁했고, 내가 대가를 요구하자 암스트롱은 은행을 털기로 했다."

암스트롱과 로스틴, 반스와 웰스 등이 폭발 사건 발생 전날 로스틴의 집에서 범행을 모의했다. 이들은 웰스에겐 은행 강도 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훕식의 마약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설득했고, 잡힐 경우 흑인들이 강요했다고 말하라고 고지했다. 이 자리에 웰스의 동료 피네티도 있었다고 반스는 말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반스에 따르면 원래 계획은 웰스에게 가짜 폭탄을 채우기로 했지만 암스트롱이 범행 당일 진짜 폭탄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피자배달을 가장해 무리와 만난 웰스는 이들이 진짜 폭탄을 목에 채우자 거부했다. 하지만 로스틴과 스톡턴이 은행을 털면 폭탄을 제거해주겠다고 윽박질렀다. 훕식과 반스의 진술에도 로든 살인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암스트롱은 끝까지 웰스 사건만큼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폭발 사건 발생 4년이 지난 2007년 7월 검찰은 피자배달원 폭발 사건 공모 혐의로 암스트롱과 반스를 기소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웰스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는 못했다. 누가 결정적으로 폭탄을 만들었는지, 또 웰스의 목에 폭탄을 매달았는지를 특정할 증거가 부족해서였다. 검찰은 웰스도 이들과 공모해 범행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2011년 암스트롱은 웰스 살해 공모 혐의로 종신형에 30년형이 더해졌고, 반스도 같은 혐의로 45년형을 선고받았다. 암스트롱은 복역 중 유방암 진단을 받고 2017년 4월 교도소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았다. 당뇨를 앓고 있던 반스도 그로부터 2년 뒤 교도소에서 숨졌다.

사실 모두가 웰스를 죽인 공범이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원한과 분노, 자신의 혐의는 줄이겠다는 이기심이 얽히고설키면서 정작 웰스 살인에 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살해 공모는 있어도 살인자는 없는 이번 사건은 영원히 그 누구도 답을 말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겼다. “누가 웰스의 목에 폭탄을 매달았는가.”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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