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키아누, 괜찮은 '남성 페미니스트'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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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키아누, 괜찮은 '남성 페미니스트' 될 수 있을까

입력
2022.05.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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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남성 액션영화의 문법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모델인 파니 피스토어와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위키피디아 캡처

남성적 권력은 오랫동안 마조히즘(masochism·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적으로 작동해왔다. 마조히즘이라는 용어의 시초가 된 소설,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서 마조히즘적 주체인 남성 화자 제베린은 반다라는 여성에게 복종하고 속하는 척하면서 자신이 구성한 시나리오의 일부분이 되도록 강제한다. 자신을 그녀의 ‘노예’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실상 폭력의 내용과 수위를 정하는 것은 제베린 본인인 식이다. 제베린은 반다에게 복종하는 척하면서 반다를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

이처럼 자신의 권력을 거부하고 부정함으로써 강화하는 남성적 마조히스트들을 철학자 닉 맨스필드는 '통합적 주체(Total subject)'라고 명명한다. 그는 자신의 책 '마조히즘'에서 이 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조히즘은 권력에 대한 특정한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 주체는 쾌락과 고통, 능동성과 수동성, 권력과 권력의 부재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시나리오를 꿈꾼다." 즉 마조히즘적 주체 내에서 권력과 권력의 부재라는 이항대립 사이의 차이는 없어지며, 타자는 자신의 일부로서 흡수된다.

마조히즘을 통해서 기존의 권력 관계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마조히즘에 대해 말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근대 이후 노골적으로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즉 남성들 사이에서 권력이 부인(否認)의 형태로, 마조히즘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때리고 맞는 액션영화가 남성 권력을 재생산하는 법

영화 '미션 임파서블' 속 톰 크루즈. 다음영화 캡처

많은 남성 배우들은 고통받는 자기 자신을 전시함으로써 명성을 얻는다.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그들의 이름이 오스카 후보에 올라갈 확률은 높아진다. 달리 말해, 그들의 공인된 연기력은 그들의 '마조력(마조히스트로서의 역량)'과 비례한다.

요컨대 등장인물과 배우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연기 기법인 '메소드 연기'를 생각해보자. 이는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잭 니콜슨 등 소위 연기파로 알려진 마초성이 강한 남성 배우들이 유행시킨 연기 기법이다. 극 중 사용하는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2년을 산다거나,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등장인물의 특징인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거나 하는 배우들의 일화는 유명하다. 많은 남성 배우들은 고생스러운 '메소드 연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여성 배우라면? 안타깝게도 여성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는 화젯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의 지극히 성차별적인 관점처럼, 여성들은 그냥 마조히스트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메소드연기는 남성성의 속성들과 관련 있을 때만 인정받기 때문에, '차력쇼'와 같은 액션영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들이 펼치는 무의미한 체력장, 다시 말해 액션영화에서 남성 배우들이 뛰고, 부러지고, 피를 흘리는 장면이 대략 1시간에서 2시간 사이에 걸쳐 상영되는 동안 남성적 육체는 거의 영원성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한다. 역사적으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자랑스러워 할 만한 체력을 갖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스크린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관객들의 숭배는 남성 배우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함으로써, 남성 배우라는 마조히즘적 주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요컨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보자. 톰 크루즈의 육체는 시리즈 전체를 통해 물신화되고, 대상화된다. 여성도 남성의 육체를 즐길 수 있다는, 얼핏 '권력 관계의 전복'을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마조히스트적 희생은 실제 영화 산업의 여남 성비와 수입을 바꾸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할리우드의 많은 남성 배우들은 이러한 상황과 지독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아무리 스크린에서 자기 희생적으로 군다고 해도 현실을 바꾸는 데는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불평등한 현실을 재생산하는 데 공모할 뿐이다.

페미니즘을 '괜찮게' 이용할 마조히스트도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정리하자면 남성적 마조히즘의 특징은 주로 여성인 타자를 자신의 기능의 일부로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에게 권력을 분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몇몇 남성들이 여성에게 일정한 '파이'를 나눠 주는 '관용'을 베풀며 생색을 내는 장면과 겹친다. 이들은 여성의 처지를 기꺼이 이해하려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페미니스트라는 역할을 '메소드 연기'한다. 이러한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제베린과 같은 남성 마조히스트와 마찬가지로, 타자를 자기 자신으로 흡수하여 자의식을 팽창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괜찮은 남성 페미니스트'는 없을까? 페미니즘을 이용하려 들지 않는, 비(非) 마조히스트적인 남성 페미니스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타자와의 차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재확인하려 하지 않으며 되레 권력을 포기하고,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마조히즘적 주체가 있을 수 있나?

키아누 리브스를 통해 본 가능성

영화 '아이다호' 속 키아누 리브스(왼쪽)와 리버 피닉스. 다음영화 캡처

나는 지금 이 글을 마조히스트 남성 배우인 '키아누 리브스'를 떠올리며 쓰고 있다. 그가 모범적인 예시라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우리는 그를 경유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액션영화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키아누 리브스는 가정불화와 가난에 시달리며 그리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가난뿐만 아니라 죽음은 키아누 리브스의 삶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 중 하나다. '아이다호(1991)'에서 '매트릭스2: 리로디드(2003)'에 이르기까지 그는 친구도, 동생도, 애인도 잃었다. 그의 불행한 인생사는 '밈(meme)'화 돼, 그가 우울한 표정으로 혼자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슬픈 키아누'와 같은 '짤방'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그가 자기의 삶을 두고 말했듯, 키아누 리브스는 자신의 영화인 '존 윅(2014)'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부와 명성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러한 삶의 맥락을 고려할 때 키아누 리브스가 주변부 존재를 다루는 대안 영화에 보이는 최근의 관심은 흥미롭다. '투 더 본(2017)'이나 '더 배드 배치(2017)'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노크 노크(2015)', '네온 데몬(2016)', '우리 사이 어쩌면(2019)' 같은 상업 영화에서까지 그는 자처해서 투자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비교적 최근 개봉작인 '매트릭스: 리저렉션(2021)'에서 그는 은유적이지만 분명하게 혐오에 맞서 퀴어 커뮤니티를 수호하는 이성애자 남성 영웅인 '네오'를 연기한다.

영화 '노크노크' 속 키아누 리브스(가운데)와 로렌자 이조(왼쪽) 아나 드 아르마스. 다음영화 캡처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소수자 중심 서사'라는 것이다. 비교적 저예산이 투자된 독립 영화의 여성 감독과 캐스트들 사이에서 홀로 '남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꽤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부와 명성을 주변부로 재분배하기를 결심한 마조히스트가 아닐까? 그래서 영화 산업의 성비를 고려해볼 때 왠지 유의미해 보이는 시도들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키아누 리브스가 이 같은 영화를 선택하는 실제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이 같은 추측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추측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키아누 리브스의 행보를 예시로 들며 '괜찮은' 남성 마조히스트-페미니스트가 가능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두고 봐야 알 수 있다'는 대답만이 가능할 것 같다. 이런 대답은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페미니스트 실천에 의해 구성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여성에게 '파이'를 떼어주는 자비로운 남성 마조히스트들이 끈질기게 그런 실천을 고집한다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의 몫 전체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유명한 말처럼,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재배치될 뿐"이기에 이런 고민을 삶 속에서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타자를, 페미니즘을 자의식 확장의 도구로 쓰지 않는 남성 마조히스트-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더 필요하다.

이연숙 작가


이연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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